독립운동가 김산(金山)에 대한 이해
- 최초 등록일
- 2006.09.15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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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립 운동가이고 공산혁명가인 김산(金山)에 대한 연구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학습과제이다. 그는 민족의 치욕인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행동으로 저항하였는가 하면, 새로운 시대사조(時代思潮)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임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애국과 애족의 자세 그리고 인간의 양심, 즉 이데올로기를 함께 생각하게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목차
1. 서론
2. 본론
가). 김산의 생애와 업적
나). 김산과 님 웨일스(Nym Wales)
다). 김산의 재평가 의의와 문제점
3.결론
본문내용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우리민족 질곡(桎梏)의 역사이다. 길지 않은 시간에 역대 어느 시기보다 중요하면서도 큰 사건들이 많았고 그러한 역사로 인한 영향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여러 모습으로 잔존(殘存)하고 있다. 따라서 관심을 가지고 중요하게 살펴야 할 것이 많고 그럼으로 챙겨야 할 민족적 국민적 책무도 있다. 강조를 하자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 보아야 할 역사 영역이 우리 근․현대사라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독립 운동가이고 공산혁명가인 김산(金山)에 대한 연구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학습과제이다. 그는 민족의 치욕인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행동으로 저항하였는가 하면, 새로운 시대사조(時代思潮)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임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애국과 애족의 자세 그리고 인간의 양심, 즉 이데올로기를 함께 생각하게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과거의 사실(事實)을 살핌으로 현재의 경영과 미래의 설계에 대한 지혜를 구하고자 함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를 통하여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독립운동가이자 혁명 사상가(思想家)인 김산(金山)에 대한 연구는 이념의 혼동을 겪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국가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시대를 살아가는 자세 정립에 도움을 줄 것이다.
2. 본론
가). 김산의 생애와 업적
김산(金山)은 1905년 3월 10일 평안북도 용천(龍川)에서 태어나 11세 때인 1916년 가출(家出), 1919년부터 이듬해까지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하였다. 그의 본명은 장지학(張志鶴)이나 본명보다는 별칭인 김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김일성(金日成)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는 장지락(張志樂)으로 등장한다. 본문에서는 세상에 알려진 그의 이름인 김산(金山)으로 하여 기술하기로 한다.
그는 1919년 3·1운동 후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일본·만주를 거쳐 1920년에 상하이[上海]로 갔다.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인〈독립신문〉의 교정·식자공으로 일했다. 이때 이동휘(李東輝)·김립(金立)·이광수(李光洙)·안창호(安昌浩)·김성숙(金星淑 : 일명 金奎光, 金忠昌)·오성륜(吳成崙) 등 다양한 경향의 인물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안창호와 김성숙의 영향이 컸다.
1921년 의학공부를 위해 베이징[北京]으로 간 그는 이 시기 무정부주의의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과 레닌의 <국가와 혁명〉 등을 읽으면서 사회주의에 경도(傾倒)되었다. 1923년 상하이에서 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였고, 베이징에서 김성숙 등과 함께 공산주의 잡지인 격월간 〈혁명〉을 발행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