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나는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6.09.11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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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유신시대에서 80년대 전두환 대통령으로까지의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학생운동에 힘쓰던 이 글의 작가 홍세화씨는 망명자 신분으로 프랑스 빠리에서 새로운 사회를 맞이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언론 출판 등의 자유 및 대부분의 기본적인 권리들마저도 반공의 이데올로기 안에 무시되던 시절 이였다. 양심수가 의견수라 한들 범죄자가 40년을 살고 모진 고문을 받는 등의 일은 별로 우리들에게 크게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시제가 아닌 것 이였으며 그때 당시의 야당이 좌파적 성격이 강한 맑스주의의 정당이 아니였을지라도 우리의 민주주의 아래에서는 여야 공존하는 토론과 설득의 문화는 어울리지 않는 것 이였다 아무튼 그때 당시 대학생은 무척 심한 이데올로기의 혼란 솎에 빠져 있었으며 특히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노동자의 기본 권리는 철저히 무시된 체 오직 테일러주의 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던 것이였다. 홍세화씨는 프랑스 빠리에 와서 처음에는 그의 관심분야와 사회적으로 인텔리전트라는 자존심에 의해서 당장 택시 운전사를 시작하지 않는다 그는 또한 한국에서는 친구 종민이의 택시기사로의 어려운 생활을 보고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얄팍한 노동조합론을 내새우는 등 심각하게 택시기사를 직업으로 삼을 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때까지 홍세화씨는 머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그 당시 우리 나라의 사회적인 모순이였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그를 도와준 씰비도 후에 말했듯이 우리사회는 노동자의 의식수준도 문제였지만 그를 이끄는 머리가 너무 많은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 한창의 대학생의 운동문화가 발달했었을 당시의 그때는 대학생은 모든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하여 이제 처음 알았듯이 마치 고장난 장난감에 너트를 조이면 되는 식의 앞만 보고 부딪히고 있는 중이였다 홍세화 씨가 프랑스로 온 후 처음 흘린 눈문이 프랑스의 데모를 하는 장면을 보고 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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