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신라향가 처용가 분석
- 최초 등록일
- 2006.08.30
- 최종 저작일
- 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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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라향가 설화 처용가의 분석자료입니다.작품 감상,배경 설화,소재의 상징성 및 다른 작품과의 관련성 등을 분석하여 요약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1. 작가
2. 내용
3. 해설 및 감상
가 배경 설화
나. 작품 감상
4. 소재의 상징성
5. 다른 작품과의 관련성
6. 요약 정리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작가
처용(處容): 신라 헌강왕 때의 관리. 설화에서는 비를 관장하는 용왕의 아들이라 하였으나, 당시 울산 지방의 호족의 아들, 혹은 당시 신라를 왕래하던 아라비아 상인일 것으로도 추측함
<삼국유사>, 권2, 기이, 처용랑(處容郞) 망해사(望海寺)
2. 내용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자기 아내를 범한 역신(疫神)을 물리치기 위해 지어 불렀다는 8구체 향가이다. 헌강왕이 개운포(지금의 울산)에 놀러갔는데 문득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길을 잃게 되었다. 왕이 이상히 여겨 신하에게 물으니, 이는 동해의 용왕의 조화이므로 절을 세워 그를 위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왕이 절을 세우기로 약속하니 즉시 날씨가 개었다. 그래서 그 곳의 지명을 `개운포(開雲浦)`라 하였다. 뒤이어 동해 용왕이 아들 일곱 명을 데리고 나와 왕에게 인사를 시키고, 그 둥 한 명을 두고 갔는데, 그가 처용으로서 왕이 미녀를 아내로 삼아 같이 살게 하였다. 어느날 역신(疫神;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이 그의 아내의 미모를 탐하여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 가지고 그녀를 범했다. 밖에서 돌아와 불륜의 현장을 목격한 처용이 오히려 화를 내지 않고 이 노래를 지어 부르니, 역신은 그의 도량에 크게 감복하여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이후로 처용의 그림만 보아도 그 문안에는 들지 않겠다고 했다. 그 뒤로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그려 붙임으로써 귀신을 막았다. 이러한 배경설화로 인해 이 노래는 축사(逐邪;사악한 귀신을 쫓음) 및 벽사진경(벽邪進慶;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아들임)의 주술적(呪術的) 의미를 갖게 되어 고려와 조선에서도 잡귀를 쫓는 의식에서 처용가를 부르고 처용무를 추는 관습이 이어지게 되었다. 신라 제 49대 헌강왕 때에는 서울에서 지방까지 집과 담이 연이어져 있고 초가집은 하나도 없었다. 길거리에 풍악이 그치지 않고 비바람도 사철 순조로웠다. 이 때에 대왕이 개운포(開雲浦)에 놀러 나갔다가 곧 돌아오려고 하면서 물가에서 쉬는데, 문득 짙은 구름과 안개가 끼어 길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
참고 자료
김문태(1990), <삼국유사 소재 `용` 전승연구>, 성균관대 대학원 박사논문.
이근표(1989), <처용설화연구>, 서울대 대학원 석사논문.
박기호(1988), "<처용랑 망해사>조와 <처용설화.연구", <한양어문>6,한양어문연구회
김학성(1977), "처용설화의 형성과 변이과정", <한국민속학>10, 민속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