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평로치청 절도사 이정기
- 최초 등록일
- 2006.07.09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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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표자료로서 교수님꼐서 직접 수정해 주신 것입니다.
참고문헌도 많고 각주도 많이 달아서 교수님게서 칭찬해주신
발표문입니다.
잘 활용하세요~
목차
一. 서론
二. 고구려 유민 이정기
三. 안사의 난과 이정기
一 ). 영주의 평로군
二 ). 난의 발발과 평로군의 이반
三 ). 난의 종결과 이정기의 두각
四. 부의 축적지 산동반도
五. 이정기의 죽음
六. 결론
본문내용
유교에 치우쳐진 사관과 일제시대 사가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잘못된 역사관으로 인해 철저히 소외된 인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구려인 이정기(李正己, 732~781)라는 인물이다. 안녹산(安祿山, 703?~757)․사사명(史思明, ?~761)의 난을 통해 고구려인으로써 당의 평로치청(平盧淄靑) 절도사가 된 후 무려 4대에 걸쳐 산동지역을 지배했던 것은, 당의 역사에서 전무후무하다. 게다가 이정기 일가는 자기 영토 내의 백성들로부터 징수하는 세금을 당에 바치지 않았다는 사실과 당(唐)과의 패권을 다투었던 사실을 볼 때 완전한 독립국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당에 안․사의 난 이후 할거한 세력 가운데 영역이 가장 컸을 뿐만 아니라 군사력 또한 제일이었다. 이때 이정기가 다스리던 절도사 왕국의 영토는, 오늘날 산동성은 물론이고 하남성과 강소성의 일부를 포함할 정도로 강성하였고 그 당시 통일 신라의 면적보다 넓었다. 이정기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이납(李納, 758~792)은 국호를 정식으로 제(濟)라고 선포하고 당과의 운명을 건 전면전을 벌였다. 이렇게 당나라에 큰 영향을 미쳤기에 『신․구당서(新․舊唐書)』에 「李正己傳」이라는 독립된 열전과 『당서(唐書)』「제상세계(帝相世系)」에 별도로 고구려 이씨라는 별도의 항목을 이정기 가문의 4대에 걸친 계보를 소상히 기록해 놓았다.
“역사는 그 민족의 혼이며, 민족의 후예는 선조의 얼을 이어 새 역사를 창조한다고 한다.” 이렇듯 당 왕조에 대한 큰 영향을 미쳤던 잊혀진 제왕 이정기는 우리의 역사에 얼마나 전해지고 있을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이정기에 대해 열에 아홉 정도가 모르는 형편이며,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1997년 가을10월․2001년 방영) KBS 역사 스페셜 제작팀이 중국의 청주지방(淸州-산동일대)을 방문하여 조사를 실시하고, 이정기에 대한 방영을 하였다. 이 방영을 통해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의 일환으로 비로소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어, 강단․재야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사료가 거의 없는 까닭에 연구가 미비한 실정이며 전문 인력 또한 부족한 상태다. 전문 연구자들은 정병준, 지배선 두 사람뿐이며 관련 논문도 겨우 8편 남짓한 실정이다. 이제까지의 연구 성과는 이정기 일가의 대한 행적을 중심으로 한 연구와 안사의 난 이후의 이정기의 모습, 치청 왕국의 당의 군대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강했던 이유와 멸망한 이유 등에 관한 연구가 진행 되어져 왔다. 본 글에서는 이 두 연구자들의 논문을 살펴보며 이정기가 누구이며, 안사의 난을 통해 그가 어떻게 활동했는지에 서술하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