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홍길동전과 로빈후드의 비교분석
- 최초 등록일
- 2006.06.28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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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홍길동전과 로빈후드를 미국학파적 관점에서 비교 분석하였습니다.
목차
Ⅰ. 序論
Ⅱ. 本論
Ⅲ. 結論
본문내용
Ⅰ. 序論
비교문학의 가치는 서로 다른 작품들의 비교를 통해 각각의 문학적 의의 찾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에는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두 문학 나라 사이의 구체적 영향 관계를 중시하는 프랑스 학파의 관점 보다는, 실증주의에서 속박에서 벗어나 문학의 보편적 이론 수립에 중점을 두고 있는 미국 학파의 관점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때문에 이 글에서는 허균의『홍길동전』 본 연구에서는『홍길동전』의 텍스트로서 ‘『홍길동전·허균 산문집』, 한양출판, 1998’을 사용하였다.
과 하워드 파일의『로빈 후드』 본 연구에서는『로빈 후드』의 텍스트로서 ‘『로빈후드의 모험』, 현대지성사, 2001’을 사용하였다.
를 미국 학파의 관점을 이용하여 비교분석하여 보기로 하겠다.
Ⅱ. 本論
1. 작가와 시대상황
(1) 허균
허균의 전 생애에 대해서 살펴보기 보다는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홍길동전』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하겠다.
1580년 허균의 아버지인 허엽이 병으로 죽은 뒤, 홀어머니와 형들의 귀여움만 받으면서 제멋대로 과거 준비만을 하던 그에게 스승이 나타났다. 천재 시인으로 이름이 났던 손곡(蓀谷) 이달(李達)이다. 미천한 기생의 몸에서 태어난 서자였기에 높은 벼슬에는 오을 수 없었지만, 허씨 집안에서는 그를 받아주었다. 나중에 영의정에까지 오른 서애 류성룡에게 문장을 배우게 하고 서얼 이달에게 시를 배우게 한 것만 보더라도, 허균의 집안에서는 신분이나 지위보다는 재주와 사람 위주로 스승을 삼았음을 알 수 있다.
1594년 문과 급제 후 벼슬길에서 복직과 파직을 번갈아 당하게 된다. 나름대로 삶을 그의 천성대로 살고자 했던 인생관 때문이었다. 1607년 홍문관 월과에서 허균은 여름 · 가을 · 겨울 아홉 차례나 잇따라 장원하였다. 그 덕으로 정3품 공주목사가 되었는데, 그는 어려운 벗 이재영부터 불러들였다. 이재영은 판서 이선의 서자라고도 하고, 시인 이달이 이선의 첩과 통하여 낳았다고도 하는데, 글재주가 뛰어났다. 그가 대신 과거를 보아 주어서 급제한 사람이 대여섯이나 될 정도였다. 이재영은 어머니와 첩까지 데리고 와서 얹혀살았다. 게다가 심우영 · 윤계영 등도 함께 와서 신세를 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허균이 공주 관아에다 삼영을 설치하였다”고 비난할 정도였다.
참고 자료
『홍길동전 · 허균 산문집』, 허경진 옮김, 한양출판, 1995.
『로빈 후드의 모험』, 하워드 파일 저, 서미석 옮김, 현대지성사, 2001.
『의적, 정의를 훔치다』, 박홍규, 돌베개,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