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고려지배층과 신분제도
- 최초 등록일
- 2006.06.25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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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지배층의 성격과 그 변화를 살펴보면서 귀족층의 유지기반인 음서제와 과거제를 기술했습니다. 이후 고려말의 신흥사대부의 성장과 함께 신분제의 변화 및 하급계층인 향리와 백정을 다루었습니다.
목차
1. 고려지배층의 성격과 변화
2. 귀족층의 유지기반
3. 신흥사대부의 성장과 신분제의 변화
4. 향리(鄕吏)와 백정(白丁)
본문내용
1. 고려지배(귀족)층의 성격과 변화
(1) 초기 - 호족(豪族)
왕건은 송악지방의 호족으로 궁예 휘하 무장들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그들로부터 추대받아 고려의 국왕이 되었다. 고려 건국초에는 지방에 독립적인 호족세력이 군림하고 있었다. 태조 왕건은 지방호족을 포섭하여 신라말의 사회혼란을 수습하여 갔으며 신라의 비부를 받아들이고 후백제를 멸망시킴으로써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호족은 고려를 세운 주역으로 광종의 왕권 강화 정책으로 세력이 약해지면서 문벌 귀족화되었다.
(2) 중기 - 문벌귀족(門閥貴族)
문벌귀족이란 고려를 세운 6두품과 호족들이 중앙에 진출하여 서로 결혼을 하여 거대한 가문을 이루고 관직을 독점하며 각종 특권을 누리게 된 사람들을 뜻한다.
성종대부터 시작되어 문종대에 이르기까지 고려의 문물제도가 정비되고 중앙집권적인 통치질서가 완비되었다. 이와 함께 고려의 정치를 주도하고 사회를 운영해 가는 문벌귀족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주인공이 되어 모든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따라서 고려사회를 문벌귀족사회라고 한다. 그러나 문벌귀족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는 이자겸, 묘청의 란으로 그 모순이 노정되었으며 무신란을 계기로 붕괴되어 갔다. 정치적으로는 음서제도(蔭敍制度: 5품이상 관료의 자제 중 1명은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리가 될 수 있는 것), 경제적으로는 공음전(功蔭田: 5품 이상 관리에게 특별히 주는 세습 가능한 토지)을 갖게 되고, 서로 중첩된 혼인관계를 유지하면서 왕실과 혼인관계를 열망하였으나 무신정변으로 몰락하였다.
(3) 말기 - 무신(武臣)
100여 년간 계속된 무인정권은 내부의 분열과 몽고의 침입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한때 무인정권은 강화도로 천도하여 대몽항쟁을 시도하였으나 집요한 몽고의 침입에 굴복하였다.
- 최충헌은 최고 권력 기관으로 교정도감을 설치하였다.
- 도방과 삼별초를 만들어 정권 유지의 군사적 기반으로 삼았다.
- 최우는 정방을 만들어 문무관의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 최우는 또한 서방을 만들어 무신정변 이후 축출된 문신들을 다시 등용하였다.
참고 자료
박용운․이정신․이진한, 『고려시대 사람들 이야기 2』, 신서원, 2002.
장유경, 『고려시대사강의』, 늘함께, 1997.
박종기, 『5백년 고려사』, 푸른역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