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역사]당쟁의 전개와 평가
- 최초 등록일
- 2006.06.24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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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붕당의 형성과 사림의 대두
1. 붕당론
2. 사림의 대두
3. 붕당의 형성
1) 사화
2) 당파의 분립
Ⅲ. 붕당정치의 전개와 탕평책
1. 붕당정치의 전개와 당쟁
2. 왕권강화와 탕평책 시행
Ⅳ. 맺는말(붕당정치의 평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사림의 중앙정치의 진출은 세종 때부터 일부 조짐이 있었으나 세조의 등장으로 위축되었고, 성종 대에 들어서 본격화 되었다. 성종초기에 홍문관(弘文館)의 형성을 계기로 구체화 되었다. 성종은 훈구대신들이 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1478년(성종9)에 예문관(藝文館)에서 홍문관을 분리하였다. 이러서 홍문관으로 하여금 경연(經筵)을 담당하게 하여 그 기능을 강화하였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지방의 사림들을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사림은 언론에 진출하면서 홍문관의 언관화(言官化)와 이를 통한 언론의 상화를 이룩하여 언론을 사림진출의 권력기반으로 삼으려 하였다. 홍문관이 언관화 되는 성종20년쯤부터 사림의 홍문관 대간 진출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성종20년 이후 사림들의 삼사(三司)관원을 통한 활동이 확대되었고, 사림들은 주로 삼사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이념을 표출해갔다. 이렇게 홍문관의 언관화를 계기로 중앙정치에 대거 진출한 사림은 계속 그 영향력을 강화하여 갔지만, 16세기까지 오는 동안 사회의 피해나 사망 등으로 구성원이 계속 바뀌었으며, 권력관계에 따라 집단의 크기가 바뀌어갔다. 전반적인 추세는 세력이 강화되면서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성종 대에는 영남지방의 사류들이 중심이 되었고, 김종직이 사림의 중심인물이었다. 이 시기에는 사림의 규모가 작아 사제관계나 지연ㆍ혈연관계가 중요한 결집의 요소였다. 물론 이념 집단적 성격도 강하여 성종 후기가 되면 성균관, 사마소(司馬所) 등의 유생들이나 기호ㆍ호남 등의 지방출신 관료들도 이들의 이념에 동조하면서 사림의 그 범주는 확대되는 추세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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