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수원 화성 문화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6.06.20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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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수원의 상징 화성을 답사하고나서 적은 답사기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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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수원에 살면서 화성이라는 문화재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찾아가보긴 처음이다. 우선 답사를 하기 전에 화성에 대해서 알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져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선왕인 영조의 둘째왕자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의 팔달산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 도시 화성. 세계 문화 유산 화성.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가 주변에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감사했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좀더 일찍 찾아보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이래저래 복잡한 마음을 뒤로한 채 화창한 일요일 오전, 수원화성으로 발길을 옮겼다. 버스를 타고 팔달문에 내려서 본격적으로 답사를 시작했다.
팔달문은 화성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문으로 흔히 남문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궁궐엘 가봐도 지붕위에 여러마리의 동물상을 볼수 있다. 팔달문에도 역시나 동물상이 올려져 있었다. 저것이 말로만 듣던 ‘어처구니’란다. 여기서 어처란 임금님이 계신곳이라는 뜻이라는데 아마도 미신의 일종인 것 같다.
팔달문의 위용에 흠칫 놀라면서 발걸음을 성벽쪽으로 옮겼다. 정약용이 거중기를 이용해서 쌓았다는 수원 화성. 어찌 이 무거운 돌들을 옮겼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성벽을 따라 가다보니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치’ 라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성벽을 살펴보면 일자로 되어 있는 구조인데 화성은 좀 특이했다. 일자 구조의 성벽에 중간중간 툭 튀어나온 구조로 되어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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