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 교양]성리학의 배불논리
- 최초 등록일
- 2006.06.13
- 최종 저작일
- 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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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송명의 유학자들이 그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대개 열렬한 배불론자이기를 자청했다는 사실은 알려진 그대로다. 그러나 순결이라는 것은 외부와의 교통을 차단하고 밀실에 안주함으로써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적진에 몸을 날려 완전히 상대방을 제압해서 나의 지배아래 두는 때라야 비로소 굳건하게 지켜질 수 있다. 사상으로서의 순결의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논의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송명 유학자가 배불의 기치 아래 한당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룬 것은 불교와 단절함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불교와 대결함으로써 가능했다.
목차
당시기의 배불논리
송대의 배불배경
성리학과 불교의 차이(心을 중심으로)
북송 대 성리학자들의 배불원리
본문내용
중국에 있어서 儒와 佛의 대립이 표면화 되고 유학의 입장에서 공식적으로 排佛論을 쓴 것은 당의 한유(768~824)라고 볼 수 있다. 한유는 맹자 이후의 유학의 일인자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유학의 도통을 확립하는 데 정열을 쏟았다. 그는 <原性, 原道論>을 지어 性心, 道德의 대의를 밝히고 佛, 老, 楊, 墨을 이단이라고 정면으로 공격하였다. 심지어 불사리를 궁중에 맞아 예경하는 일을 극간하는 <論佛骨表>를 상소함으로 헌종의 노여움을 사서 조주형사에로 좌천된 일 까지 있다.
한유는 도통을 확립하여 요가 순에게, 순이 우에게, 우가 탕에게, 탕은 문무주공에게, 문무주공은 공자에게, 공자는 맹자에게 도를 전하여 왔는데 맹자의 죽음으로 인해 그 뒤에는 전하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유학의 정통은 맹자에게 있고 楊, 墨은 이단이라 하고 老佛은 배척하였다. 그리하여 맹자 이후로 논란되어 온 性의 문제에 대하여서는 性三品說을 내놓아 성의 품에는 상중하 3푼이 있다고 함으로써 성론의 쟁론인 성선이니, 성악이니 하는 편파적 주장을 화쟁하려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