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역사는 심판할 수 있는가 / 역사를 보는 관점
- 최초 등록일
- 2006.06.11
- 최종 저작일
- 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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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는 심판할 수 있는가 라는 화두에 대한 에세이 입니다.
독일의 문호 쉴러, 헤겔등의 말을 인용해
역사를 판단하는 객관적 관점은 없다, 라는 주장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역사를 심판함으로써 정의가 구현될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역사적 진실의 정치성은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드러남의 대상이다. 법정의 심판을 통해 과거를 단죄하고 청산한다는 방식을 넘어, 과거를 드러내서 살아있는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 때 과거는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사법적 심판이 아무리 추상같다고 해도과거를 망각하는 한 불행한 과거는 되풀이되게 마련이다. 사법적 결단처럼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줄 순 없지만 과거에 대한 뼈아픈 기억과 성찰이 법적 심판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독일의 문호 쉴러는 “세계사는 세계심판이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역사는 바로 심판이다’ 라는 말도 성립될 수 있다. 지나간 시간 속의 크고 작은 사건과 행위는 역사라는 여과장치를 통해 걸러지고 비판되고 심판 받는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가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인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는 작업에서 비롯된다.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곧 1차적인 심판을 의미한다. 때문에 역사적 진실을 밝히지 않고서는 심판대에 올려놓는 것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역사에서 진실을 밝힌다는 것이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역사가는 사실을 먼저 밝히고 그것을 통해 평가하고 역사적 의미를 찾는다. 사학도가 역사적 실체를 먼저 밝히는 일에 우직하다 싶을 정도로 달라붙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 없이, 평가의 잣대나 먼저 갖다대고 역사적 의미를 찾으려는 태도는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학적인 태도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연구를 보면 역사적인 실체를 밝히려는 노력보다 이미 나타난 사실들에 대한 의미 부여와 평가에만 주력하는 풍토가 많다. 진실을 전제하지 않는 의미의 진위논란은 상상력의 결과일 뿐 객관적인 근거를 가진 것은 될 수 없다. 역사학은 진실을 찾으려는 종합적인 탐구력과 그것을 기초로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는 가치관 사이의 상호노력을 통해 완숙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참고 자료
강만길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김미경 <‘과거를 심판하며’ -한국, 미국, 독일의 역사 인식에 관한 비교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