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구한말 고종의 대외정책을 세력균형정책과 특사외교 정책의 두 시기별로 나누어 보았음.
목차
머리말
1. 친정이후 고종의 세력균형정책
1) 미국을 통한 세력균형정책
2) 러시아를 통한 세력균형정책
2. 한반도중립화정책과 특사외교
1) 한반도중립화정책
2) 특사외교정책
맺음말
본문내용
1863년부터 1907년 일제의 의해 강제퇴위 당하기 전까지 44년간 보위에 있던 고종은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의 조선말 역동적인 정치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면서 개항한 이후에 청일 양국의 대립 속에서 자주적인 근대화는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러는 가운데 러시아의 세력 확장에 의한 남하정책과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입이라는 새로운 문제와도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전제군주에 위치에 있던 고종의 대외인식과 그에 따른 정책결정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대원군과 명성황후를 비롯한 민씨 외척 세력의 사이에서 끌려다니는 암약한 군주로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고종은 구한말 변혁의 중심에서 외세의 침략에 대응하는 여러 가지 정책을 취함으로서 자주적인 근대화를 꾀하려 했다. 전통적인 화이관에서 탈피하여 서구 열강들과 교류함으로서 근대화를 이루려하는 그의 생각은 친정선언이후 구체화 되어 미국에 대한 관심과 수호통상조약, 그를 통해 한반도 주변세력의 균형을 꾀하려는 정책으로 이어졌으며 임오군란 이후에 청이 전통적인 속방체제를 강화해 나아가는 정책을 취함에 따라 청의 간섭을 벗어나기 위하여 引露政策을 취하여 청의 간섭과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러시아와 수호조약을 통해서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러시아의 군사적보호 속에서 조선의 자주성을 꾀하려 한 것이었다. 즉, 조선말 개국통상정책이 서구세력의 유입에 따른 수동적인 정책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조선이 서구를 수용하고자 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후 1890년대에 들어서자 대륙침략의 계획하에 꾸준히 군사력을 키우던 일본이 조선에 대한 이권쟁탈에 나서며 기존에 갑신정변과 임오군란 이후에 조선에 대한 종주관을 공고히 한 청과의 전쟁이 이어졌고 여기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일본은 조선에 대한 적극적인 간섭과 이권을 강탈하여 갔다. 일본의 침략위기상황에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자행하였고 이에 고종은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겨가 러시아와 일본의 새로운 대결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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