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우리민족의 부족국가 형성과 생산력에 관한 연구
- 최초 등록일
- 2006.05.31
- 최종 저작일
- 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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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민족의 부족국가 형성과 생산력에 관한 연구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원시부족 국가의 정의
2. 원시부족 국가의 형성
3. 생산력에 관한 연구
본문내용
1. 원시부족 국가의 정의
부족공동체의 연합체가 부족국가이다. 부족국가는 부족공동체의 최고의 단계이며, 원시사회의 최후의 단계이다. 원시사회말기에 형성된 부족국가로는 부여, 고구려, 옥저, 읍루, 예맥, 마한, 진한, 변한 등이 성립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는 중국의 고문에 자세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하지만 중국의 고문인 [삼국지]위지 동위전은 형성시기와 발전을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일제시기 일본인 학자들은 삼국지의 사회적 가치를 더 인정하면서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므로 소국이 삼국(부족국가)으로 발전하는 역사단계를 설정하기 어렵다. 반면에 한국인 학자들은 삼국에 선행한 소국을 고전적인 국가 기원론에 입각하여 원시부족국가로 규정해 삼국형성이 갖는 역사적 계기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2. 원시부족 국가의 형성
1)고조선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다. 역사학적으로 고조선의 존재 시기는 기원전 10세기 경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 그 이후 고조선 주민들은 요하일대에서 기원전 3세기 초까지 살았고, 기원전 8, 7세기경에는 이미 비파형청동검을 위시한 청동기문화를 누리고 살고 있었다. 청동검은 거친무늬청동거울과 함께 출토되고 있는데 이는 고조선 전반기의 청동문화단계에 지도자 내지 지배자들이 종교적 사제를 겸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유사』에서 고조선의 지배자를 종교적 제사장을 의미하는 `단군(壇君)`과 정치적 군장을 의미하는 `왕검(王儉)`을 써서 단군왕검(檀君王儉)을 표기하고 있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기원전 3세기 전반에 고조선은 연(燕)과의 투쟁에서 실패하여 평양지역으로 옮겨 살았다. 그런데 기원전 4세기 말부터 시작된 연과의 투쟁은 중국의 사서『위략』에서 비교적 구체적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몇 가지 점이 주목된다. 먼저 연이 왕을 칭하고 독자적인 국가임을 선포함에 있어 조선 후도 왕을 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 왕이 연을 치겠다고 나선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기에 전쟁을 도모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대부라는 관등명이 있는 것도 눈에 띤다. 대부가 있었으니 경이나 사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보면 4세기 말의 고조선은 왕과 관료체계가 있는, 조직적인 통치체제가 갖춰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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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