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신화]나폴레옹의 영웅신화
- 최초 등록일
- 2006.05.18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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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나폴레옹이 왜 영웅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 작성했습니다
목차
나폴레옹 생애
나폴레옹 신화
나폴레옹 일화
나폴레옹 콤플렉스
본문내용
1821년 나폴레옹이 유배지에서 외로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프랑스는 충격과 격정에 사로잡혔다. 추모의 열정이 전국을 휩쓰는 가운데 나폴레옹 신화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유배지에서 나폴레옹이 자신을 따라온 라스 카즈에게 그때까지의 삶을 돌이키며 회고록을 구술한 것을 출판한『세인트 헬레나의 비망록』이었다. 몰락한 황제는 15년 간의 치세 동안 자신이 추구한 진정한 목표는 프랑스 대혁명의 대의를 실천하고 절대 군주들의 압제에 시달리는 민족들에게 자유의 이념을 전파하며, 나아가 유럽 모든 민족의 공존과 화합을 이루는 위대한 제국을 실현하는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세계를 제패한 젊은 영웅의 좌절된 꿈, 이는 1820~1830년대에 전 유럽을 휩쓴 낭만주의 물결을 타고 유럽의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되살아난 나폴레옹의 모습이었다. 전장으로 향하는 군악대의 축포 속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낭만주의 시인과 사상가들은 황폐하고 무미건조한 현실을 조롱이나 하듯 영웅시대에 대한 향수를 노래했다. 나폴레옹 숭배는 7월 왕정 시대에 활짝 만개했다. ‘프랑스 국민의 왕’으로 추대된 루이 필리프는 나폴레옹 숭배 열기를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맞추어 이용했다. 7월 왕정의 나폴레옹 숭배작업이 절정에 이른 것은 1840년, 전 유럽의 이목을 끌며 진행된 나폴레옹 유해의 환국이었다. 한때 나폴레옹을 무찌른 유럽 동맹군이 다시 모여 프랑스를 위협하는 형세가 되자 프랑스에서는 복수를 외치는 호전론이 힘을 얻었으며, 여론을 의식한 루이 필리프는 국민의 분노를 진정시키는 한편 대외적인 세력과시를 위해 국제적인 비난을 무릅쓰고 나폴레옹 유해를 파리로 송환했다. 나폴레옹 유해의 환국은 실로 범국민적인 추모와 숭배의 분위기 속에 이루어졌다. “그는 조국의 용사들이 잠들어 있으며 조국의 부름을 받을 용사들이 옷깃을 여밀 성역에서 여전히 통치하고 명령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나폴레옹은 애국 병사들의 성지인 앵발리드에 자리 잡았다. 나폴레옹의 기억은 곧 프랑스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했으며, 7월 왕정은 국민총화의 분위기를 진작하고 정권의 안정을 유지하는 실익을 얻었다. 민중의 가슴속 깊이 파고든 죽은 황제는 단순한 숭배와 추모의 열정을 넘어서 일종의 세속종교의 경지에 들어서기도 했다. 나폴레옹은 재앙을 쫓고 복음을 전하는 ‘신의 아들’이자 ‘메시아’로서의 품격을 얻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