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무용]이매방- 전통무용의 살아있는 전설
- 최초 등록일
- 2006.05.14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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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매방 선생님의 일대기, 연보, 대표적 작품에 대한 설명 레포트자료
목차
Ⅰ. 우봉 이매방의 일대기 및 약력
1. 일대기
2. 약력
Ⅱ. 우봉 이매방의 대표적 작품
1. 기원무
2. 승무
3. 초립동
4. 입춤
5. 검무
6. 장고춤
7. 살풀이춤
8. 사풍정감
9. 대감놀이
10. 보렴무
11. 소고춤
12. 북소리
본문내용
1. 일대기
우봉 이매방은 1927년 5월5일 전남 목포에서 10남매 중의 막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무와 가까운 환경에서 자랐다. 원명은 이규태 이며 어릴 적 식구들과 중국에 가서 잠시 살 때 중국에서 유명한 무용가인 ‘매란방’씨가 자신의 이름의 앞과 뒤를 따서 ‘매방’으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한다.
그의 집에는 목포 권번의 권번장이었던 함국향이라는 기생이 세들어 살았다 한다. 그래서 그는 걸음마와 춤재롱으로 주위의 귀여움을 받던 시절부터 시작해 초등학교 때부터 6년간을 권번 예기들 틈에 끼어들어 살다시피 하여 이미 입춤, 굿거리, 기본 등을 배운터였다.
집안에는 가무를 즐기시는 부모가 계셨고 굿판이나 놀이판이 잦은 동네에서는 가무가 낯설지 않았으며 정식의 배움터인 권번에 가면 집안으로 할아버지가 되는 이대조 (당시 무안 출신의 명무)가 가무 선생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의 고모 한 분은 옛날에 소리 잘하던 이소희로 일찍이 그의 집안은 예의 줄기가 있었던 셈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의 춤 재롱은 7~8세 때부터 본격적인 공부로 연결됐다.
방학때면 공부하러 가는 권번의 기생들을 따라가 박영구, 이창조(검무를 배움) 등에서도 배웠다. 이것은 그의 승무에 큰 특징으로 힘을 보탰다.
1939년 그의 나이 12세때 만주 대련에서 정포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배구자 무용단이 공연을 왔다가 그때 그의 재주가 배구자의 눈에 띄어 당장 그의 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의 첫 무대 데뷔인 셈이며 15세 때에는 목포 역전에서 임방울이 이끄는 명인 명창대회 무대에 따라 다니며 각처를 누비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23세때 처음으로 군산 영화동에 무용 연구소를 차려 운영하다가 서울로 광주로 부산으로 다시 서울로 옮겨 다녔던 것으로 보아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던 이매방의 삶이 결코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생활고로 어려운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고 안정을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춤을 추고 가르치는 일을 끊지 않았다.
1977년 서울 Y.M.C.A 대강당에서 “이매방 전통무용 공연”을 통해 그의 춤이 훌륭하다는 평이 나게 되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커다란 감명을 주는 살아있는 춤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참고 자료
한국 전통무용가 이매방 선생님의 전반적인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