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환관
- 최초 등록일
- 2006.05.13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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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에 대한 레포트 중 자유선택 주제입니다.
목차
서론
1. 환관이란?
2. 환관의 기원
본론
1. 누가 환관이 되나?
2. 환관의 외형과 심리
3. 환관의 임무
4. 환관의 폐단
5. 역사에 이름을 남긴 환관
결론
본문내용
서론
1. 환관(宦官)이란?
환관이란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거세를 당하고 궁중에서 봉사하던 남성 관료를 지칭하는 말이다. 원래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인위적으로 거세를 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남성 구실을 할 수 없었다. 남성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성은 더욱 아닌 이들은 인위적 제도에 의해 만들어진 ‘제3의 성’으로 정상적이지 못한 삶을 영위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정상적이지 못한 환관은 전제 군주 시대 정치의 산물로서 동서양의 역사를 막론하고 등장한다.
환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권적 전제 군주 정치 체제의 궁궐 내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특히 서양에 비해 군주 정치의 전통이 길고 궁궐이 수많은 궁녀들로 넘쳐흘렀던 중국에서는 궁녀들과의 간통을 방지하는 동시에 궁궐 내의 노동력을 확보하는 등의 필요성에 의해 거세한 남성들이 필요했는데, 이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그 필요성을 훌쩍 뛰어넘어 황권을 등에 업고 권력의 실세 노릇을 하기에 이르렀다.
2. 환관의 기원
어느 나라에서나 왕은 거대한 궁궐을 짓고, 그 속에서 숱한 여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따라서 그 모두를 자신의 시선 아래에 둘 수 없었던 왕들은 자신의 여자들을 다른 남성이 넘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이 불안감을 해소 하기 위해 왕은 자신의 여자들을 자기 이외의 어떤 남자와도 만날 수 없도록 해야만 했다. 그래서 궁궐을 바깥 세계와 완전히 차단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궁궐내의 크고 작은 일에 궁녀들에게 모두 맡길 수가 없었다. 남성은 왕인 자기 혼자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남성은 궁궐 내에 있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환관이었다.
중국 역사에서 환관의 기록이 최초로 보이는 것은 은나라의 갑골문이다. 이 갑골문에는 옆의 그림과 같이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모양에 ‘칼도(刀)자’를 상형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상형문자 아래 강족(羌族)이 그려져 있어 강족 포로들을 거세하여 환관으로 삼았다는 내용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은나라 무정왕 때의 기록에 나타난다. 물론 그 이전에도 환관이 있었을 테지만, 문자상으로 기록된 것은 이때가 최초다. 당시의 은나라는 서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던 강족(羌族)들과 많은 전쟁을 벌여 이를 통해 얻은 포로들을 거세하여 환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무정왕이 기원전 1300년경이었으므로 중국 환관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황제의 비서실장 환관》박인수 지음, 석필
《환관과 궁녀》박영규 지음, 김영사
http://www. naver.com
http://www.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