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민주공원을 다녀온후
- 최초 등록일
- 2006.05.09
- 최종 저작일
- 2004.10
- 1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부산의 민주 공원을 다녀온후 감상문을 적은 것입니다.
작은 도움이나마 되었음 좋겟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우선 4.19혁명은 이승만시절의 부정선거로 인해 4.19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유당 정권은 1960년 3월 15일의 제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승산이 희박해지자 국가 보안법으로 언론을 탄압하고 부전선거운동을 획책하였다.
그것은 3인조니 9인조니 하는 상호감시투표, 무더기투표, 사전투표, 야당에 대한 폭력행사 등 갖가지 수법이 동원되었다.
부정선거에 대한 준비는 부산시청뿐만 아니라 자유당이 주동이 되어 중앙의 각부 장관이 민정 시찰차 출장 내려왔다는 명목을 내세우고 시에 와서 부정선거를 직접 독려 하였다.
이것으로도 부족하여 각기관장은 사전에 사표를 담보로 매일 부정선거 독려를 위한 보고전화를 하여야 했다. 일반공무원은 공무원 간담회를 통하여 부정 선거를 강요받았으며, 선거당일에는 폭력배를 동원하여 시민위안공연까지 하였다.
또한 개표에서도 갖가지 부정개표법이 나타나 온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었다.
이와 같은 부정선거의 전면에는 경찰이 나섰던 것이다.
부산에서도 여타의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등학생들이 먼저 4월혁명의 햇불을 치켜 들기 시작한다.
부산에서는 3월 7일, 고등학생 20여명이 공명선거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려던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유인물 등을 압수당한 일이 발생하였다. 이들은 서울의 `공명학생특위`와 맥을 같이하는 `공명선거호소학생위원회`를 조직한 후 영도와 부산역 전일대에 다소의 삐라를 살포하기도 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무래도 자료로 보는것보다 먼저 VTR화면으로 접하고 난 다음 자료를 살펴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VTR부터 시청하였다.
당시의 민주운동사를 한편의 영화처럼 볼수 있어 좋았고, 그때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몸소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화면을 통해서나마 약간의 상황을 눈으로나마 볼수 있어 좋았다.
다음으로 VTR방을 나와서 옆으로 쭉 자료들과 열사들의 사진, 유품, 유서등을 하나하나 보았다.
나이어린 초등학교4학년 학생부터 시민에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해 목숨바친 열사들의 사진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과 함께 이분들에 의해 지금의민주주의 국가가 되지 않았나 싶어 고마움도 동시에 느껴졌다.
또한 어느 열사가 부모님에게 쓴 유서를 읽어보니, 민주주가 얼마나 중요했으면 부모님에게 가장 큰 불효인 죽음을 택하면서까지 민주운동을 할까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그리고 유품중에서도 안경이나 책등의 옛날 시대를 반영하는듯한 물품등도 많이 있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유품은 백범 김구가 끼고 있던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안경이 거기에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으로로만 보던 안경을 실제로 보게되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