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역사]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 최초 등록일
- 2006.04.27
- 최종 저작일
- 2006.04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조선의 통치체제의 의정부와 육조, 삼사 외에도
언론기관인 삼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언론기관은 조선왕조가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
그러한 조선의 언론과 그 기관의 기능 그리고 그들이 갖고 있었던
자격과 특권들에 대해 기술하였다.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1.조선의 언론
2.조선의 대표적 언론기관
① 중국과는 다른, 조선에서만 꽃피운 조선의 대간(臺諫) 제도
② 부정부패가 없는 관청, 언론 삼사(言論三司)
③ 언론삼사의 역사
3.언론삼사의 기능
① 간쟁과 시정
② 탄핵
③ 서경
④ 권력의 견제와 균형
4.언론삼사 관원의 자격과 특권
본문내용
1.조선의 언론
조선 사회의 언론이 상당히 발달했음은, 관료 제도의 운영에서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급변하는 건국 초기의 상황에서도, 결코 대간의 폐지나 축소 등이 논의된 적이 없었으며, 대간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것은 유교 이념에 위배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왕은 물론 관료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은, 언론의 규제는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인식했다.
대간은 절대로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며, 동시에 공론의 대변자요, 법의 수호자라는 점도 확신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섬겨야 하는 군주와 신봉하는 신념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그 신념에 따르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대간의 직제와 활동은, 도덕 정치의 구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신념 하에서 이루어졌다. 즉, 대간은 사대부 공론의 대변자요, 건국 이래의 법의 수호자라고 인식되었던 것이다. 대간은 자신들이 어느 군주의 충실한 신하라는 점을 늘 생각했다. 조선의 대간들은, 진정한 충성은 군주에게 버림받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군주를 올바른 도리로 이끌도록 간언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바로 여기에 대간이 보통의 감찰관들과 다른 점이 있는 것이며, 이러한 대간 제도의 운영이 조선 왕조 유교적 정치 체제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추구했던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합의를 통한 조화와 균형의 정치였다는 것이다.
대간은 조선 왕조의 정치ㆍ사회적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그들은 탄핵 활동을 통하여 당시의 지배자들에게 도덕적인 완성을 촉구하고, 또 그들의 비도덕성을 추궁했기 때문에, 당시의 정치나 당시의 지배자들은 최소한의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2/ 청년사/ 1996
이성무/ 조선의 사회와 사상/ 일조각/2004
이성무/ 조선의 부정부패 어떻게 막았을까/ 청아출판사/ 2000
김경수/ `언론`이 조선왕조 500년을 일구었다/ 가람기획/ 2000
김세철 김영재/ 조선시대의 언론문화/ 커뮤니케이션북스/ 2000
한우근/ 朝鮮時代의 言權/ 한국학술정보/ 2001
국민대학교박물관/ 조선시대의 언론활동/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