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풍수지리
- 최초 등록일
- 2006.04.19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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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풍수지리에 대한 유례와 소개
간단한 풍수지리에 대해서 알아본다
목차
한국 풍수지리의 역사(歷史)
풍수지리(風水地理)의 기본용어(基本用語)
본문내용
풍수설·지리설 이라고도 한다. 도성(都城)·사찰(寺刹)·주거(住居)·분묘(墳墓) 등을 축조(築造)하는 데 있어 재화(災禍)를 물리치고 행복을 가져오는 지상(地相)을 판단하려는 이론으로, 이것을 감여(堪輿:堪은 天道, 輿는 地道), 또는 지리(地理)라고도 한다. 또 이것을 연구하는 사람을 풍수가(風水家) 또는 풍수선생, 감여가(堪輿家), 지리가(地理家), 음양가(陰陽家) 등으로 부른다.
그들은 방위(方位)를 청룡(靑龍:東)·주작(朱雀:南)·백호(白虎:西)·현무(玄武:北)의 4가지로 나누어 모든 산천(山川)·당우(堂宇)는 이들 4개의 동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하였고, 어느 것을 주로 하는가는 그 장소나 풍수에 따라 다르게 된다. 그리고 땅 속에 흐르고 있는 정기(正氣)가 물에 의하여 방해되거나 바람에 의하여 흩어지지 않는 장소를 산천의 형세에 따라 선택하여 주거(住居)를 짓거나 조상의 묘를 쓰면 자손은 그 정기를 받아 부귀복수(富貴福壽)를 누리게 된다고 믿었다. 이와 같이 풍수의 자연현상과 그 변화가 인간생활의 행복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은 이미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시작되어, 그것이 음양오행의 사상이나 참위설(讖緯說)과 혼합되어 전한(前漢) 말부터 후한(後漢)에 걸쳐 인간의 운명이나 화복에 관한 각종 예언설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다시 초기 도교(道敎)의 성립에 따라 더욱 체계화되었다. 한국 문헌에서 풍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의 탈해왕(脫解王)에 관한 대목에 왕이 등극하기 전 호공(瓠公)으로 있을 때, 산에 올라 현월형(弦月形)의 택지(宅地)를 발견하고 속임수를 써서 그 택지를 빼앗아 후에 왕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또 백제가 반월형(半月形)의 부여(扶餘)를 도성(都城)으로 삼은 것도, 고구려가 평양을 도읍으로 삼은 것도 모두 풍수사상에 의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