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사]풍신수길의 통일정책, 일본다도의 미의식
- 최초 등록일
- 2006.04.12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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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일정책(도수령, 총무사령, 인귀령, 검지...) 및 일본다도의 미의식
목차
1. 풍신수길의 통일정책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시오.
2. 일본 다도의 역사와 다도에 보이는 미의식을 간단히 언급하시오.
본문내용
2. 일본 다도의 역사와 다도에 보이는 미의식을 간단히 언급하시오.
중국의 당나라에서 유행하던 다문화는 견당사(遣唐使)들에 의해 나라시대부터 일본에 전파되었다. 815년 승려 에이츄(永忠)가 천황에게 차를 바쳤다고 하는 기록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차에 대한 기록이다. 그 후 가마쿠라시대 초기에 승려 에이사이(榮西)가 1168년과 1169년 두 차례에 걸쳐 선종(禪宗)과 함께 중국의 새로운 다문화를 수입했다. 가마쿠라 시대의 승려 에이사이가 전한 차 마시는 풍습은 선종의 사찰은 물론 무가사회와 서민들 사이에도 널리 보급되었다. 남북조 전란시대에 활약하던 신흥귀족들은 투차를 즐기면서 서원을 호화롭게 장식해두고 손님을 불러 함께 감상하며 즐기고자 했다. 투차는 차의 맛을 마셔 맞추는 놀이로, 도박성도 강하고, `바사라`라고 불리는 신흥 무사 층에서 유행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호화스럽고 값비싼 도구를 사용하였으나 15세기 후반 이후, 선(禪)을 바탕으로 하여 소박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즐기려는 풍조가 유행했다. 이 시기의 센노리큐(千利休)는 다도가 추구하는 미의식, 즉 와비(わび)의 발견과 양식화에 노력하여 다도를 확립시켰다. 와비란 고요하고 차분한 가운데 느끼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멋이다. 이는 미의식의 일대 전환이며 일본다도의 기본정신이 되었다. 이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새로운 유파가 형성되면서 다도는 크게 발전하였다. 유파는 이에모토 (家元-한 유파의 정통을 잇는 가문)라는 수장을 정점으로 한 엄격한 계급체계로 구성되는데 센노리큐의 손자들이 만든 우라센케(裏千家), 오모테센케(表千家), 무샤노코지센케(武者小路千家) 등의 종가를 비롯, 야부노우치류(藪內流), 엔슈류(遠州流), 세키슈류(石州流) 등 여러 유파가 있다. 메이지 유신후 서양문화의 유입으로 한 때 쇠퇴하였으나 지식인들 사이에 전통문화로서 가치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져 대중화에 성공, 학교교육과정에 도입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다도의 각유파는 정통의 수장인 이에모토를 중점으로 수백만 명의 문하생을 거느리고 일본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도의 미의식은 사규에 의해 설명되는데 이것은 화경청적이라고 하여 차를 마시는 사람이 가져야할 마음을 말한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