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학사논문수준입니당^^
목차
I . 서론
II. 로마제국의 멸망을 바라보는 관점들
III. 로마제국 멸망의 원인
1.경제 사회적 측면
2.정치적 측면
3.이민족의 침입
4.인구문제
5.그 외의 측면
IV. 결론
본문내용
비록 로마제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졌지만, 유럽인들의 로마에대한 동경은 사그라질
줄을 몰랐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들도 마찬가지였다. 동서교회가 완전히 분리되기 이전까지만해도 동로마제국의 황제들은 옛 로마제국의 부흥에 엄청난 힘을쏟아 부었다. 중세 때에도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이탈리아를 장악하기위해 애를 썼으며, 샤를르마뉴대제의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대관이라든가 ‘신성로마제국’ 이란 명칭 자체가 로마에 대한 유럽인들의 동경을 나타낸다. 히틀러의 경례로 널리 알려진 ‘오른팔들기’는 사실 로마제국의 인사법이었다. 로마제국의 독수리상은 최고의 상징이 되어 나폴레옹을 포함한 유럽각죽에서 국가 문장으로 채택되었다. 세계최강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의 역사속에서도 독수리 문양이 나타나고있다. 이처럼 숱한 흔적을 오늘날에도 남기고 있는 로마제국은 왜 멸망했는가?
라틴지방의 작은 공동체였던 Rome는 일찍 귀족과 평민간에 계급투쟁을 종결짓고, 그 힘으로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한니발과 카르타고를 역사속의 한 줌의 재로 날려버리고1) 지중해의 재해권을 장악한 뒤,세계제국으로 성장하였다. 도시 공동체의 단결된 힘에서 나온 이러한 놀라온 발전은 모든 유럽인들의 선망이 되었으며, 유럽의 정신사에 중요한 한줄기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 문화도 Rome가 아니었으면, 그 영향력을 이렇게 누리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보통 신화를 말할때도 그리스 신화가 아닌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부르는 것도 그 맥락일것이다.)
로마제국의 영토는 당시 문명을 이룩하고 있던 지역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영토를 유지하지 위한 로마의 관료제와 잘 훈련된 로마군, 법, 교통망은 근세이후에야 유럽의 국가들이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의 교통망은 가히 신화적인 것이었다. 그 당시 만들어진 도로를 지금도 쓰고있는걸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로마의 상업활동은 멀리 중국에까지 진출할 정도로 활발했다. 마치 영원히 번영할 것처럼 보였던 로마였다. Latium지방의 작은 도시공동체로 출발하여 로마는 400여년의 세우러끝에 전 지중해 세계를 포괄하는 大帝國을 건설하였다. 그 과정은 순풍을 탄 배의 순항같지 않았다. 공화정 초기에는 성산사건같은 귀족과 평민간의 계급투쟁으로 로마는 분열의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켈트족의 침입, 동맹시의 반란 ,카르타고의 세기에 걸친 장기전, 공화정후기의 정치적 분열과 혼란, 이 모든 것을 겪어내고 로마는 대제국으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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