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문학사]엘리자베스,튜터왕조의 시대적 배경
- 최초 등록일
- 2006.04.03
- 최종 저작일
-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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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튜터 왕조
2.엘리자베스 시대
3.시대적 흐름
1)인문주의
2)종교 개혁
본문내용
1.튜터 왕조
장미전쟁을 치르는 동안 중세의 봉건적 제도의 약화가 초래되었고, 이를 틈타 절대군주제의 확립을 추구한 헨리 7세(1485-1509)는 계속해서 유력한 귀족들을 압박하고 보다 하위 계급의 인사들을 고관으로 채용하면서 봉건제도의 세력확장을 방지했다. 다음의 헨리 8세(1509-47)는 왕비 이혼사건으로 로마 교황과 충돌, 1534년 로마교화와 결별한다. 그는 스스로 영국교회의 수장(Supreme Head of the Church of England)임을 자처하면서, 영국의 수도원을 해산하고 그 재산을 몰수하여 자신과 심복들에게 분배하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구 세력은 탄압되고 새 세력이 대두하게 되었다. 튜더왕조 시대에는 봉건적 지배계급이 쇠퇴하고 중앙집권적이 되어 궁정의 세력이 커졌으며 유능한 신인들이 조정의 고관으로 채용되었다. 새 시대로 접어든 튜더왕가의 지배계급은 모두 문예부흥의 정신에 고취된 사람들이었다. 헨리 7세는 물론 뒤를 이어 즉위한 헨리 8세도 학문과 교육에 열의가 대단했으며, 자신들도 학자였다. 헨리 8세의 뒤를 차례로 이은 왕자와 왕녀들, 즉 에드워드 6세(1547-53), 메리(1553-58), 엘리자베스(1558-1603)는 하나같이 학식이 있었고, 에드워드의 뒤를 이어 9일간밖에 여왕 노릇을 못하고 참수되어 죽어간 제인 그레이(Lady Jane Grey)도 10대의 어린 나이로 벌써 플라톤을 그리스 원어로 읽었다는 기록이 있다. 튜더왕가 시기에는 중에는 행정가나 외교관들이 모두 학문과 문예에 뛰어났다. 특히 Roger Ascham(1515-1568), Thomas Wilson(1525-81), Sir Thomas Smith(1513-77) 등은 모두 학자인 동시에 궁정과 관계를 맺고 정치적으로도 활약한 사람들로 손꼽는다.
참고 자료
1.『영문학의 이해 』윤기한 편저. 문경 .1998
2.『영국사』 Maurois Andre 신용석 옮김.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