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작가론]조선시대 여류작가
- 최초 등록일
- 2006.04.02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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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작가 4인방
신사임당, 허난설헌, 매창, 황진이에 대해 설명한 글입니다
목차
1. 신사임당
2. 허난설헌
3. 매창
4. 황진이
본문내용
2. 허난설헌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허난설헌(1563∼1589)의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이다. 강릉에서 태어났는데 현상(賢相) 공(珙)의 혈통을 이으며 누대의 문한가(文翰家)로 유명한 학자와 인물을 배출한 명문 가문으로 엽(曄)의 딸이자 균(筠)의 누이이다. 이러한 천재적 가문에서 성장한 난설헌은 어릴 때 오빠와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웠으며, 아름다운 용모와 천품이 뛰어나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짓는 등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허씨가문과 친교가 있었던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웠으며, 15세 무렵 안동김씨(安東金氏) 성립(誠立)과 혼인하였으나 원만한 부부가 되지 못하였다. 남편은 급제한 뒤 관직에 나갔으나, 가정의 즐거움보다 노류장화(路柳墻花)의 풍류를 즐겼다. 거기에다가 고부간에 불화하여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 속에 살았으며, 사랑하던 남매를 잃은 뒤 설상가상으로 뱃속의 아이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친정집에서 옥사(獄事)가 있었고, 동생 균마저 귀양가는 등 비극의 연속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먹으로 고뇌를 달래며, 생의 울부짖음에 항거하다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이처럼 조선 봉건사회의 모순과 잇달은 가정의 참화 속에서 살았던 난설헌은 그의 시 213수 가운데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시가 128수나 될 만큼 신선사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난설헌의 작품 일부는《난설헌집》으로 간행되었고, 그 외에도 국한문가사 춘하추동 사계절을 겨울과 여름, 봄과 가을로 대구법을 사용하여 외로움을 부각시키고 가부장적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말도 못하며 인생을 보내야 하는 조선 여인네들의 한숨을 매우 뛰어난 문학적 작품으로 표현한〈규원가〉가 유명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