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설]사씨남정기 작품론
- 최초 등록일
- 2006.02.22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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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소설 수업 시간의 발표요지를 수정, 보완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목차
1. 시작하며
2. <사씨남정기>의 줄거리
3. <사씨남정기>의 목적론 시비
4. <사씨남정기>의 구조
5. 마치며
본문내용
1. 시작하며
<사씨남정기>는 <창선감의록>과 함께 초기 가정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조선시대에 널리 읽혔으며, 조선 후기 가정 ․ 가문소설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이제까지 <사씨남정기>에 관한 연구는 목적론 시비가 그 중심이 되어 왔고, 그 유형이나 구조에 있어서도 가정소설의 한 유형인 ‘쟁총형 소설’이나 관음보살 모티프를 이용한 ‘관음소설’이라는 주장, 또는 이것을 처첩 간의 갈등으로 보는 시각과 욕망의 표현으로 보는 시각,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보는 시각 등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사씨남정기>의 목적론 시비와 그 구조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2. <사씨남정기>의 줄거리
대명(大明) 가정연간(嘉靖年間) 금릉 순천부에 유현(劉炫)이라는 명환이 있었다. 늦게야 일자를 낳고 연수라 이름 하였다. 유공의 부인 최씨는 연수를 낳아 놓고 자라는 것도 보지 못하고 졸하였다. 연수의 나이 10세에 이르매 문장재화(文章才華)가 대성하여 향시(鄕試)에 장원급제하고, 15세에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급제하였다. 그는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으나 연소(年少)하므로, 10년을 더 수학하고 나서 출사(出仕)하겠다고 천자에게 상소하였다. 천자는 특별히 본직(本職)을 띠고 6년 동안의 여가를 준다.
유한림(劉翰林)은 섭덕(涉德)과 재학(才學)을 겸비한 사씨와 결혼하였다. 금실이 좋았으나 사씨는 유씨 가문에 들어온 지 9년이 되어도 출산을 못한다. 사씨는 후일 조상의 향화(香火)를 받들지 못할까 근심한 나머지 유한림을 권하여 새로이 여자를 보게 하였다. 유한림은 거절했으나 여러 번 권하매 마지못하여 교씨(喬氏)라는 처녀를 맞아들인다.
교씨는 천성이 간악하고 질투와 시기심이 강한 여자였다. 겉으로는 사씨를 존경하는 척하나 속으로는 증오하였다. 그러다가, 잉태하여 아들을 출산하고는 자기가 정실(正室)이 되려고 마음먹고, 문객(門客) 동청(董淸)과 모의하여 남편 유한림에게 사씨를 가지가지로 참소한다. 유한림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부정한 자취를 드러내어 모략하는 데는 마음이 굳은 유한림도 미혹되어, 그 모략을 사실로 알고는 사씨를 폐출(廢黜)시키고 곧 교씨를 정실로 맞이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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