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서재필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 최초 등록일
- 2006.01.26
- 최종 저작일
- 2005.12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구 한말 서재필 박사가 했던 독립활동과 친일활동 그리고 미국에서 활동을 소개하는레포트입니다...
목차
1. 출생
2. 활동
1) 1910년 이전의 활동
2). 외국에서의 독립 외교 활동
3). 미군정 고문 활동기
3. 비판론
1). 서재필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론
2)독립신문의 비판론
본문내용
1. 출생
한국 최초의 박사학위 소지자로서 본관은 대구이며 호는 송재이고 미국 귀화명은 필립 제이슨.
1864년 1월 7일 외가가 있는 전라남도 보성에서 부친 서광효와 모친 성주이씨 사이의 차남으로 출생했고 충남 논산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충청도 진잠현의 칠촌 아저씨 서광하에게 아들이 없어 그곳의 양자로 입양되었고 그의 양모는 한 때 세도가 안동김씨의 집안이었다.
일곱 살 무렵에 서울로 상경하여 당시 판서직에 있던 외삼촌인 김성근의 집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18세가 되던 1882년 실시된 별시문과 병과에 세 번째로 합격하여 개화파 우두머리 격인 김옥균, 서광범, 홍영식, 박영효 등과 교류하게 되었다. 김옥균, 서광범은 서재필의 친인척 관계로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이들과 지내면서 개화에 관한 지식과 국제 정세에 대한 감각을 키워나아 갔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국방근대화의 시급함을 절감하고 김옥균의 권고를 받아들여 1883년 일본의 육군학교에 유학을 하여 당시 일본의 신식 군사지식과 기술을 도입하여 조선의 국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이 학교에서 동료 14명과 함께 1년간 현대 군사훈련을 공부하고 1884년 국내의 정치사정과 정부의 재정상의 이유로 귀국하여 사관학교의 설립을 건의, 고종의 승낙을 받고, 조련국의 사관장이 되었으나 임오군란이후 청의 세력과 수구파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2. 활동
1) 1910년 이전의 활동
가. 국왕을 이용한 위로부터의 개혁시도- 갑신정변 참여
1884년 12월 청의 세력과 수구파의 제거 없이는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개화파(김옥균, 홍영식)등은 갑신정변을 일으켜 수구파들을 제거하고 국왕을 이용하여 위로부터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이 때 서재필은 사관생도들을 지휘하여 국왕의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신정부 내각에 병조참판 겸 정령관에 임명되었으나 청군의 간섭으로 정변은 3일만에 실패로 돌아가고 김옥균, 박영효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