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후사]박헌영에 대한 비판
- 최초 등록일
- 2005.12.20
- 최종 저작일
- 2005.06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박헌영에 대한 비판에 대해 집중적으로 서술한 레폿입니다.
교수님께 교정을 받고 다시 작성한 글이라 많은 도움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인물을 평가하는데 있어 지적될 수 있는 오류 중 하나가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려를 배제한 채 비판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객관적인 비판이 될 수 없으며, 현재의 기준으로 임의적인 재단을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앞서 박헌영에 대해 비판 중 이런 문제점이 노출된 주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평가해보고자 한다.
앞서 조선 공산당의 결성에 있어 당의 지도노선, 강령, 규약 등에 대한 어떠한 공식적 논의나 의결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당 재건이 선포된데 대해 비판하였었다. 그러나 당에 있어 구성원의 활동지침과 같은 전술적 개념을 규정하는 것은 원칙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사항이라는 점이 지적된다. 그리고 당시 상황에서 미국의 조선의 우방국인가 적대국인가 하는 판단의 근거 역시 당시 상황으로는 미지수였다. 단순히 자본주의 국가인가 파시즘 국가인가 하는 판단의 기준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인식 아래서 박헌영이 수립한 전략․ 전술의 불가피성이 인정된다.
다음으로 다시 생각해볼 부분은 대중과의 괴리문제이다. 1946년 초기에 조공은 대중정당의 위치에 도달했지만, 그해 말 남로당은 이미 전위당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당의 외곽단체들조차 대중에의 진정한 통로라기보다는 단순히 당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되었다. 게다가 공산당의 급격한 좌경화는 미군정으로 하여금 우익측과 긴밀한 협력을 하면서 좌익의 활동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인식 아래서 다시 평가해보자면 당시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한 환경이 매우 적대적인 환경이었다는 것이 인정된다. 이러한 사실이 공산주의 운동으로 하여금 대중을 점차 당과 유리시킨, 시기를 잘못 택한 극단적 방법을 취하게 했으므로, 그가 처했던 시대 상황을 고려해 비판의 대목에서 제외시키기로 했다.
그렇다면 비판의 초점은 해방 이후에 사회주의 혁명노선으로써 박헌영의 노선이 옳았는가 하는 문제이다. 해방 이후 공산당은 급격히 좌경화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