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가비평]권지예 소설론
- 최초 등록일
- 2005.12.09
- 최종 저작일
- 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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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글에서 다루는 그녀의 작품 범위는 그녀가 발표한 두 권의 단편집과 이들 단편집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소설 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주는「뱀장어 스튜」,그리고 가장 최근의 작품인 「꽃게무덤」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 외롭게 언어의 날을 벼려온 권지예의 작품 세계와, 발전 가능성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약간의 미흡한 점, 독특한 그녀의 문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 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8년간 유학했던 프랑스 파리라는 공간이 소설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되는가를 두루 살펴보도록 하겠다.
목차
# 들어가며
# 권지예의 소설 세계
1. 자신을 향한 진정한 사랑의 준비 : 『꿈꾸는 마리오네트』
1-1. 「꿈꾸는 마리오네뜨」
1-2. 「정육점 여자」
1-3. 「섬」
2. 사랑과 상처와 삶의 아이러니 : 「뱀장어 스튜」
3. 삶은 행복한 재앙 : 『폭소』
3-1. 「스토커」
3-2. 「행복한 재앙」
3-3. 「설탕」
3-4. 「폭소」
# 아직은 곳곳에서 드러나는 고압적 몸짓
# 권지예의 문체
# 빠리와 권지예
# 나오며
본문내용
문학평론가 김미현의 말처럼, 권지예의 소설은 90년대 문학이 지나온 터널 끝에서 만나게 되는 햇빛 같다. 그래서 더 밝게 보이고 더 건강해 보인다. 90년대 문학의 키워드를 권태나 무기력, 실험과 엽기 등으로 파악했을 때 이를 다시 소설의 본령이나 기본으로 되구부리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지예 소설의 `밝음`은 터널을 통과하기 이전의 밝음과는 전혀 다른 밝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권지예의 소설은 모든 소설이 시작하는 곳에서 시작하고, 모든 소설들이 끝나는 곳에서 끝난다. 그 사이에 멈추는 정거장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이때 중요한 점은 권지예의 소설이 절망에서 시작해 딱히 희망이라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절망이 아닌 것은 분명한 그 무엇에서 끝난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권지예의 소설은 비극의 고전적인 의미나 기능에 주목한다. 유종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말하고 있는 문학의 ‘미트리다테스적 효과’에 충실하다. 폰투스의 왕 미트리다테스가 자신에 대한 독살 모의를 피하기 위해 소량의 독을 계속적으로 섭취하여 독에 대한 면역을 길러내었던 것처럼, 고통을 제대로 경험하면 그에 대한 통제력 또한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극의 효과이기도 하다. 비극이 비극인 이유가 그것을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 그것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처방법일 수 있다. 이런 역설과 모순이 윤리가 되는 소설이 권지예의 소설들이다. 교통사고의 경험 후에 대한 인터뷰 내용중 권지예는 “고통스러워도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보다는 고통 자체를 어떻게 다스리며 사는가가 참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고 말한다. 희망과 욕망과 모순이 이리저리 마구 뒤엉켜 있는 인간의 삶. 그래서 작가는 그런 모습을 `행복한 재앙`이라고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