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매천 황현
- 최초 등록일
- 2005.12.08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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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매천의 생애와 그의 작품에 대해서(절명시 와 매천야록)
목차
1. 작가연구
1) 작가의 생애
2) 시대적 배경
2. 황현의 문학관
3. 작품연구
1) 매천야록
2) 절명시
3) 황현의 창의시
4. 황현의 업적과 당시의 상황
▶부연자료.
1) 구한말삼재
2) 을사조약
3) 경술조약 (경술국치=한일합방)
본문내용
1. 작가연구
1) 작가의 생애
황현(黃玹)은 조선 말기의 격동기에 ‘오애시’와 ‘절명시’ 등의 명작을 지은 시인이자 끝내는 절명시를 남긴 채 살신성인한 절의의 선비로 자는 운경(雲卿)이고 호는 매천(梅泉)이다. 그의 선조는 전라남도 장수(長水) 사람이었다. 그의 선조들에 대해 보면 세종대왕 때 영의정을 한 황희가 있는데 그는 충청병사, 사간원정언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황희의 5대손인 황진은 임진조국전쟁시기에 진주싸움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이런 명문가문의 사람이었고 애국적인 선조를 가졌다. 황현은 그의 아버지 시묵(時黙)의 장남으로 1855년 11월 11일에 전라남도 광양(光陽)군 봉강면 문덕봉 아래인 서석촌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매천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는 그의 집안은 몰락하여 농민의 신분으로 가난한 시골에 살았다. 다행히 조부가 가세를 일으켜 아버지는 황현의 입신양명을 위해 집에 천 권의 책을 비치하는 등 온갖 정성을 쏟았다. 한편 황현은 2~3세 때 숯덩이를 들고 다니면서 글씨를 쓰는 시늉을 하였으며 일곱 살 때 서당에 들어가서 공부하였는데 글짓기를 좋아하였다. 그는 서당에서 공부를 잘하여 선생을 대신하여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여 11살 되었을 때 그를 어떤 잔치집에 데리고 갔었는데 잔치가 시작되자 ꡒ기러기소리를 잔치자리에서 듣노라ꡓ라는 시구를 지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그가 11살이 되었을 때의 조선은 이 시기에 이르러 봉건통치체제가 그 밑뿌리부터 뒤흔들리기 시작한 때였다. 그래서 조선 각지에서는 농민봉기가 일어났고 외래 침략자들이 조선에 침략의 마수를 뻗칠 때였다. 1866년 7월에 미국해적선 <샤먼>호의 평양침입과 프랑스함대의 강화도 습격도 있었다. 이러한 외래침략은 어린 황현에게 애국의 불씨를 심어 주었을 것이다. 1879년 24살 때 서울에 올라가서 당시 시단에서 이름을 떨친 영재 이건창을 만나 그에게 자기의 시를 보이고 그에게서 칭찬을 받은 때로부터 그의 시적 명성을 떨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