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사]로베스삐에르를 통해 본 프랑스혁명
- 최초 등록일
- 2005.12.03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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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시무시한 공포정치로 악명높은? 로베스피에르가 아닌 진정으로 민중을 위했던 개혁가로서의 그의 삶과 혁명의 전개과정에 대한 글
목차
Ⅰ. 로베스 삐에르의 초기 생애
Ⅱ. 로베스 삐에르의 사상
Ⅲ. 로베스삐에르의 정치활동
Ⅳ. 떼르미도르의 반동
Ⅴ. 결 론
본문내용
프랑스 혁명에 대해 떠올려 보면 흔히들 가장 많이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권사상에 대한 기치에 대한 것 못지않게 프랑스혁명에 대한 또다른 이미지는 단두대(guillotine)에 의한 피의 처형, 공포정치 등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정심에 중심에는 언제나 로베스삐에르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 프랑스혁명에 대해 배운 것을 더듬어 보면 로베르 삐에르하면 우선 기요띤으로 사람들의 목을 함부로 잘랐던 잔혹한 자꼬뱅의 괴수가 연상되었다. 프랑스 혁명을 피로 물들인 자꼬뱅에 비해 지롱드는 국민화합을 부르짖고 온건노선으로 혁명을 본궤도에 올려놓으려다 자꼬뱅에 무참 당한 당파였으며 자꼬뱅 대신 지롱드가 계속 집권했더라면 혁명은 떼르미도르의 반동이나 나폴레옹의 등장을 허용치 않고 결실을 맺었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기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전적으로 오류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기요띤에 의해 쉴새 없이 많이 목들이 잘려 나갔고 온건파든 강경파든 로베스삐에르나 그의 가장 충실한 동지 생쥐스트의 눈 밖에 났다하면 가차없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로베스삐에르는 프랑스혁명의 중심에 있었으며 진정한 혁명가였다. 그에게 자유로운 나라에 적합 정부의 성격은 오로지 공화제뿐이었으며 그는 또한 인민의 대의에만 집착하여 인민에 대한 존경심을 품었다.
참고 자료
1. 노명식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 1789-1871 까치. 1981.
2. 마르끄 블롸조 로베스 삐에르 탐구당. 1988.
3. 알베르 쏘불 프랑스 혁명사. 탐구탕.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