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독일 표현주의 영화
- 최초 등록일
- 2005.11.19
- 최종 저작일
- 2004.11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교수님께 a+를 주신 리포트입니다. 최고의 선택으로 최고의 학점을 받아가시길
바랍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1910년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영화가 침체기에 있을 때,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미국의 영화는 급성장 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 당시 미국의 영화는 다분히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소위 말하는 스튜디오 시스템의 등장이다. 이 당시 비록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 졌고 그 결과로서 정치, 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었지만 강력한 영화산업은 그 전쟁으로부터 나왔다. 1918년에 나치가 집권하는 1933년까지 독일 영화산업은 규모, 기술적인 정교화, 그리고 세계적인 위력 면에서 할리우드 다음에 위치했다. 휴전 얼마 후 독일영화는 1910년 말에 시작되어 1926년까지 계속된 주요한 양식적인 운동인 표현주의로 해외에 널리 퍼졌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영화산업의 팽창은 크게 1916년 정부가 대부분의 외국영화에 대한 수입금지조치를 내림으로써 형성된 고립에 기인했다. 독일극장들의 수요에 의해서 제작회사의 수는 1914년에 25개에서 1918년에는 130개로 늘어났다. 그렇지만 종전 무렵 UFA(Universum Film Aktiengesellschaft)의 설립은 합병과 더 큰 회사들을 향한 경쟁의 시작이었다. 1917년 조직된 UFA는 제작자 Eric Pommer, 시나리오 작가 Hans Janowitz와 Carl Mayer, 프로덕션 디자이너 Hermann Warm, Walter Reimann, Walter Rohrig, 영화감독 Robert Weine을 중심으로 조직된 회사로 고도로 양식화 된 영화와 과장되고 왜곡된 세트를 이용하여 많은 영화들을 찍었다. 우선 표현주의 영화란 20세기 초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미술사조인 표현주의를 영화로 차용해온 것이다. 미술사적인 의미에서 표현주의는 `형태가 객관적인 현실로부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반응으로부터 나타난다고 보는 미술 운동`을 의미한다. 표현주의는 영화로 건너오면서 다분히 미술적인 경향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는 무엇보다 미장센에 크게 의존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