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세사]한국중세사 농민봉기
- 최초 등록일
- 2005.11.15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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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농민 천민의 봉기에 대해 원인과 전개과정과 그 의의에 대해 논했어요
목차
Ⅰ. 머리말
Ⅱ. 봉기의 원인
Ⅲ. 봉기의 전개
1. 12세기 전반 농민의 유랑
2. 12세기 후반 농민&천민항쟁
3. 대몽항쟁 시기
Ⅳ. 봉기의 의의
Ⅴ. 맺음말
본문내용
무인집권기 농민항쟁의 양상은 재지세력간의 갈등, 호족과 잡족인의 대립, 군현과 군현 간의 갈등과 같은 지역간 대립, 향.부곡등 부곡제 주민의 봉기와 노비 신분의 봉기 등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또한 신라부흥운동과 같이 왕조질서를 부정하는 변혁적 성격에서 왕조정부에게 수령과 향리등의 수탈을 완화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타협적인 성격에 이르기까지 그 지향성도 편차가 매우컸다.
이처럼 항쟁은 매우 다양한 편차를 보였지만 그 속에는 항쟁을 낳은 구조적인 모순이 공통적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왕조정부가 수취를 위해 설치한 군현체제의 모순이었다. 군현제와 부곡제 영역의 차별적인 수취체제는 수령과 이속층이 민을 쉽게 수탈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던 것이다. 재지세력간의 갈등. 속현과 부곡지역의 봉기, 주현과 속현지역의 갈등과 같은 다양한 편차의 항쟁은 이같이 군현체제의 모순 때문에 일어났다. 그리고 이후 항쟁이 점차 진행되면서, 그러한 체제를 유지한 왕조질서를 부정하는 신(新) 국가 건설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국가와 농민의 대립관게라는 항쟁의 기본모순은 이같이 군현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있다. 또한 군현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된 농민항쟁은 무신정변 이후 농민과 더불어 천민,노비 들로까지 봉기가 대거 확대되었다
무신정권 하의 양반들의 반란이나 승려의 반란이 대체로 구체제의 유지나 복구를 목적으로 한 복고적이고 반동적인 것임에 반하여 일반민들의 봉기는 구질서의 타파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진보적이었다. 농촌사회의 해체, 하층민의 사회의식 성장, 지배력의 약화등으로 인해 발생한 봉기들은 거의 모두가 구질서의 타파를 지향하고 있었다. 특히 천민, 노비의 봉기는 고려 때까지도 남아 있던 고대적인 유제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들 봉기는 결국 정부에 의해 진압되고 말았다. 전국에 걸쳐 활발하게 일어났고, 때로는 서로 합세하여 대규모화하기도 했지만 끝내는 무신정권에 의해 진압당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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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세사학회, 「고려시대사강의」, 늘함께, 1997
한국민중사연구회, 「한국민중사1」, 풀빛,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