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근대사]영락제(永樂帝)의 정책활동
- 최초 등록일
- 2005.11.13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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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대 영락제의 정책에 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영락제의 정책활동
1.북경천도(遷都)
2.몽골족 정벌
3.정화의 남해원정
4.영락대전의 편찬
Ⅲ.나오며
본문내용
한편 문화적 사업으로서는 대 편찬사업을 폈다. 영락제는 무인적 기질을 가졌으면서도 학문을 적극 권장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영락대전이다. 이것은 1403년 7월 한림학사 해진등 147명에게 현존하는 전적을 모아 백과전서인 유서를 만들게 하였다. 經(유교관계), 史(역사.지리), 子(제자백가), 集(문학), 그리고 천문, 음양, 의복, 승도, 기예 등까지 모든 분야를 망라하여 대규모의 서적을 그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이 책의 이름은 처음 문헌대성(文獻大成)이라 하였다.
그러나 단기간에 편찬된 이 책이 영락제의 마음에 차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요광효등에 명하여 다시 편찬을 시작했다. 이 때에는 민간이 학자도 동원되었다. 그리고 전적에 밝은 관리들을 사방에 보내어 책을 사들이는데에 인색하지 않았다. 수집된 여러 서적의 기사는 ‘홍무정운’의 문자 순서에 따라 분야별로 배열하여 1407년(영락5년) 11월에 완성하였다. 영락제는 이 방대한 책을 보고 대단히 흐뭇해하고, 책이름을 ‘영락대전’이라고 하였다. 그 규모는 1만 1095책이고, 권수로는 본문 2만 2877권, 범례목록 60권으로 되어있는 중국 최대의 유서(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이 때에 편찬에 참여한 자가 무릇 2169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짧은 기간에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동원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단기간에 편찬되어 조잡한 면도 있지만 원본이 이미 없어져버린 것을 많이 수록했기 때문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면 영락제는 왜 이렇게 방대한 규모의 영락대전을 편찬하였는가?
영락제의 즉위에 반대하는 지식인을 편찬사업에 참가시켜 회유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불만을 가지고 있던 학자들이 여기에 동원되어 편찬 작업에 참여하는 중 반발심이 누구려질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러한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천하의 독서인들을 모두 편찬사업에 참여시킬 수는 없는일이니 충분한 설명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또 다른 정치적 의도가 예상되는데, 황제는 천도에 의지하여 예악과 제도를 제작하고 지상 세계를 총괄하는 자라는 것을 대 백과전서를 편참함으로서 나타내 보이려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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