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삼국유사
- 최초 등록일
- 2005.11.07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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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유사 본문의 혜공왕과 원성왕대의 발제문입니다
목차
1.혜공왕
2.원성왕
3.독서삼품과
본문내용
◎혜공왕
경덕왕의 장남이며 경수 왕후 소생으로 이름은 건운이다. 758년 출생, 세살의 나이로 태자에 책봉되고 여덟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태후의 섭정을 받으며 제왕수업을 했다.
혜공왕 즉위 이후에 여러 불길한 사건이 터졌는데 766년에는 해가 두개가 나타나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고 2월에는 암소가 다리가 다섯인 새끼를 낳았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위를 향하여 다섯 번의 역모 사건이 발생하여 그 중 한 사건으로 왕이 바뀔 것이라는 점을 예언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강주에서는 땅이 내려앉아 큰 연못이 생기고 그 물빛이 검푸르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767년 6월에는 지진이 발생했다.
경수 태후는 당나라에 혜공왕을 책명해 달라고 요청하고 768년 책봉서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뒤로도 기이한 현상은 계속되었고 이런 모든 일들이 반역의 빌미가 되기 좋았다. 768년 7월에 각간 대공이 반란을 일으켰다. 싸움은 장기화 되었지만 지방 군대가 토벌대를 형성하여 반란군을 공격하는 바람에 대공의 반란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난리는 석달을 끌었는데 상을 받은 자도 많았고 죽은 자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혜공왕은 계속 이어지는 반란을 겪으며 모후의 섭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혜공왕은 정사에는 관심이 없었고 지나치게 색을 탐하였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천재지변이 계속 이어져 민심이 뒤숭숭하였다.
조정은 상대등 양상파와 이찬 지정파로 나누어져 세력을 다투었는데 왕을 배반하고 처음으로 지정이 반란을 일으켰다. 후에 다시 김양상이 이찬 경신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 왕의자리에 올랐다.
김지정의 반란을 누르고 즉위한 선덕왕 김양상은 재위 6년째인 서기 758년 정월 13일 “과인이 죽은 뒤에는 불교 법식에 따라 (시신을) 불태우고 뼈를 동해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병사했다.
참고 자료
김부식 지음, 이재호 옮김 ≪삼국사기≫, 솔출판사, 1997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2002
이종욱, ≪신라의 역사2≫, 김영사, 2002
김태식,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김영사, 2002
박영규, ≪신라왕조실록≫, 웅진닷컴,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