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시)]T. S. Eliot의 `프루프록의 연가`에 대한 논의..
- 최초 등록일
- 2005.10.28
- 최종 저작일
-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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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T. S. Eliot의 `프루프록의 연가` 중 아래 두 연에 대한 상세한 분석..
시를 읽을 때 전체적인 큰 흐름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정 연을 중심으로 다양한 비평 이론을 빌려와 논의해보는 것도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그다지 길지 않은 시, ꡔ프루프록의 연가ꡕ에서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어찌 감행 할 수 있으랴?”와 더불어 위에 언급한 문구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러한 반복되는 문구는 자아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였거나 이룰 수 없어서 좌절한 욕망에 대한 새로운 진전을 위한 행동으로 이해한다. 이런 행위는 꿈에서 강박적으로 행해지거나 때로는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발전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좌절된 욕구를 계속적으로 반복하다보면 실제와 욕구 사이에 생겨난 공백을 보안할 수도 있다는 희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떠하던지 이 부분은 시 전체를 읽어보지 않아도 시인 자신과 동일화 되어 있는 프루프록이 작품 내부와 현실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와 더불어 이 시의 담론 체계에서 그가 놓여 있는 위치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부분임은 분명하다.
우선 방이라는 공간부터 살펴보자. 방은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열림과 닫힘 여부에 따라서 닫힌 공간이기도 하고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물론 닫힌 공간이라고 하더라도 그 공간 안에 있는 대상이 자신 보다 열등한 존재일 경우 타인을 바라보는 우월한 입장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엘리엇은 이러한 방을 사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넘어서 “방에서 여자들이 오가며”라고 표현함으로써 시각화 시키고 있으며, 다음 행에서는 시각화 된 공간을 다시 “미켈란젤로에 대해 얘기를 하고”라는 표현으로 공간화 시키고 있다. 이렇게 “하나의 장면의 시적인 묘사 속에 공간을 위한 시간적 표현과 시간을 위한 공간적 표현이 교차 직조 되어 있는”(이만기 110) 방이라는 공간은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여성들이 자유롭게 오고가는 공간으로 프루프록에게 호의적인 대상들이 모여 있는 공간은 아니다. 여인들의 오고가는 동작은 나약해져 있는 프루프록에게는 위협을 가할 지도 모르는 대상의 냉소적인 움직임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를 바라보거나 바라봄을 당하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를 계속 얘기하고 있는 이들의 행동 역시 그들의 대화 속에 참여하지 못하는 그에게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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