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비잔틴 제국의 성립과 문화
- 최초 등록일
- 2005.10.09
- 최종 저작일
-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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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비잔틴 제국의 성립과 문화
정치 경제수록
목차
1.비잔틴 제국의 성립
2.비잔틴 제국의 발전과 쇠퇴
3.비잔틴 제국의 정치와 경제
4.비잔틴 문화와 서유럽
5.참고자료
본문내용
옛 로마 영토의 절반가량을 회복했다. 그는 대내적 개혁을 단행 하고 미술을 장려하여 문화를 진흥시켰다. 특히 법전 편찬에 착수 하여 「민법대전」을 완성하였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상당한 교육과 훈련을 받았고 잠자지 않는 황제 라는 별명을 얻은 매우 부지런한 지배자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결 단력과 용기가 부족한 성격상의 결함이 있었다. 이러한 결함은 서 민 출신 황비 테오도라 (508~548)에 의해 보완되었다.
서커스 조련사 딸인 테오도라는 아름다움과 지성을 겸비한 배우 출신이었다. 로마사에서 유례가 없이 뛰어난 재능과 추진력을 갖춘 강한 여성인 그는 궁중 계파의 움직임이나 콘스탄티노플의 민중 심리를 잘 파악하여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적절히 보좌하였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업적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국세 진흥과 영토확장이었다.
그는 벨리사리우스(505~565), 나르세스(478~573)등 유능한 장군을 파견하여 아프리카의 반달 왕국, 이탈리아의 동고트 왕국, 스페인의 서고트 왕국 등을 정복하였다. 또한 외교적 타협을 통해 6세기 중반까지는 발칸 반도와 소아시아의 민족들을 복속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비잔틴제국은 옛 로마제국의 반에 해당하는 넓이로 팽창하였다. 그러나 그는 서방정책에 국력을 집중시키고 동쪽으로 적절히 대비하지 않은 결과 페르시아 ‘사산 왕조’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치세 말기에는 제국의 생존을 위해 서방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또 다른 업적으로 행정체제의 개혁이 있었다. 특히 532년 니케의 민중 반란이 있은 후 정부의 징세정책을 개혁하고 관리의 부패를 방지하여 행정효율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동시에 행정제도의 대부분을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관할 하에 두어 군주의 전제적 권한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가장 주목받는 업적은 로마법의 법전화 작업이었다. 보통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이라 알려져 있는 이 법전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편찬되었다. 그것은 법률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비잔틴 학문의 발달을 위해서도 중요한 공헌을 하였으며, 후의 유럽 문명에 항구적이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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