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신라 묘제의 변천
- 최초 등록일
- 2005.09.24
- 최종 저작일
-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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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정도면 초A급이죠
목차
1. 개론
2. 신라묘제의 시기적 구분과 대표적 묘제들의 연구
1) 조기(거서간 ~ 이사금 시기) - 토광묘(土壙墓) 연구
2) 전기(마립간 시기) -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 연구
3) 후기(왕 시기) - 횡혈식석곽분(橫穴式石槨墳) 연구
3. 신라 묘제가 경주 중심에서 외곽으로 이동한 원인
4. 신라 지방의 고총과 비석에 대한 연구
5. 결론
본문내용
1. 개론
신라는 진국[辰國] 12국 가운데 지금의 경주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로국[斯盧國]이 모체가 되어 성장한 나라로, 먼저 진국 모든 지역을 차례로 통합하고 이어서 변한지역[弁韓地域]의 가야제국[伽倻諸國]을 병합하여, 고구려, 백제와 함께 삼국으로 병립하다가 삼국을 통일하여 서기 935년 고려에게 국권을 넘겨줄 때까지 1000년을 존속한 왕국이다. 그래서 신하의 영역 또는 세력권은 시기에 따라 확장되었던 것이므로 신라고분의 공간적 범위도 그러한 신라의 확장된 영역 또는 세력권 안에서 형성된 고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삼국시대는 각 시기에 따라 신라의 영역이나 세력권의 경계를 정확히 그을 수도 없는 것이고, 또 한때 신라의 세력권 이었던 곳이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변적인 것이어서 편입과 이탈이 무쌍하였을 것이므로 그러한 기준만으로 신라고분의 지역적 범위를 정하는 것은 무척이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신라고분의 공간적 범위를 일단 각 시기에 따라 수도였던 경주와 동질의 고분문화가 펼쳐진 지역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묘제 자체의 동질성만으로 범위를 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묘제 차제가 문제가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고분의 구조와 부장유물이 보여주는 종합적인 문화상이 경주와 종질적인 지역과 아닌 지역으로 구분하고, 그 다음으로 동질적 지역 내에서 수도로서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였던 경주와 지방이 일정한 격차를 나타내고 있을 때, 그 동질지역은 단순한 문화지역이 아니라 실질적인 신라의 정치적 영역 또는 세력권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각 시기에 따라 신라고분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또 어떤 종류의 묘제들이 존재하고 있었을지 살펴보도록 하자.
[신라조기] 신라초기에 경주에서 토광묘와 함께 옹관묘 옹관묘 (甕棺墓, 독무덤)
가 있다. 그러나 신라 초기에 경주에서 옹관묘가 최고 지배계층이 사용하는 주묘제로 등장된 시기는 물론 없었으며,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 보면 경주 일원에서 신라 조기의 옹관묘는 독자적인 분포를 이루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토광묘군속에 부수적인 존재로 분포하고 있을 뿐이다.
참고 자료
[신라고분연구, 최병현, 일지사]
[한국고대사 연구 제 6집. 한국고대사회연구소.]
[新羅後期古墳文化硏究 , 홍보식 <춘추각>]
[三國遺事의 新硏究 - 신라고분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 이은창 <신라문화선양회>]
[신라의 역사2, 이종욱, 김영사]
[신라의 고분(묘제), 신라의 성장과 고분문화의 전개. 부산대학교 학위논문]
[KBS 역사스페셜 ‘천년의 수도 경주’]
[삼국사기(신편) 김부식 신서원]
[건대사학(1974년 제 2 집) - 신라고분의 변천, 김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