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한국 교육사, 서양교육사
- 최초 등록일
- 2005.09.14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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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와 외국의 교육사를 전체적으로 요약한 것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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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 교육사는 원시시대의 교육, 삼국시대의 교육, 고려시대의 교육, 조선시대의 교육, 실학파의 학풍과 교육, 구한 말 근대교육, 일제침략기의 식민지 교육으로 볼 수 있다.
원시시대에 ‘학교’라는 교육기관은 없었으나, 주로 가정이나 특정한 모임장소에서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전달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한 것이었던 만큼 교육의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교육적 필요와 교육내용간의 일치도가 높아 학습동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시절부터 더 나아가 태아 때부터 뚜렷한 목적도 없이 불필요한 내용을 전수, 전달하는 오늘날의 교육현실보다는 필요에 의해서 학습이 시작되고, 흥미에 따라서 학습시간이 자유자재로 길어지거나 짧아질 수도 있었던 원시인들의 교육이 현실적이며 낭비와 학습의 결손이 없는 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유교와 불교가 순수한 종교적인 기능의 수행을 넘어서 문화 전반에 걸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윤리의식과 정치제도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고구려는 교육기관은 최초의 관학이라고 할 수 있는 태학, 사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경당으로 분류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태학은 소수림왕 2년에 중국의 학제를 본받아 국가관리를 양성하기 위해 주로 상류계층의 자제를 오경(시전, 서전, 주역, 예기, 춘추)과 삼사(사기, 한서, 후한서) 등 유학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전통적인 고전들로 문교육을 시켰다. 경당은 정확한 설립연대를 알 수는 없으나 가장 일반적인 서민교육기관이었으며, 독서와 습사 등 문무교육을 겸한 것으로 보아 신라의 화랑도교육과 흡사했을 것이다.
백제는 사료를 통해 볼 때, 학교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교학지임을 맡은 자로서 유교경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전문가 즉, 박사를 육성하는 박사제도를 통해 상당한 수준의 고등교육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284년 백제사람인 아직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태자를 가르쳤으며, 285년에는 왕인 박사가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으며, 고구려가 태학을 세운지 3년 만인 375년에 박사 고흥에 의해 「서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미 백제는 고구려보다도 학교교육이 먼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일본교육 및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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