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프랑스 혁명의 수정주의 해석과 한계
- 최초 등록일
- 2005.08.04
- 최종 저작일
- 2004.11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프랑스 혁명의 수정주의 해석과 한계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으로 소개한 발표문
목차
1. 서론
2. 수정주의의 해석
2.1. 코반의 해석
2. 2. 테일러의 견해 ; ‘부르조아’의 재정의
2.3 퓌레와 리쉐 등의 견해 - <엘리트 혁명론>
2.4. 소결론
3. 정통파의 반박
3.1. 코반의 ‘반봉건적 성격의 부정’에 대한 르페브르의 반박
3. 2. 코반과 테일러의 ‘부르조아’ 개념에 대한 반박
3. 3. 엘리트 혁명론에 대한 반박
3.4. 소결론
4. 결 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 론
프랑스 혁명에 대한 정통적인 해석은 그것이 ‘반봉건적이고 반귀족적인 부르조아 혁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대부분의 혁명사가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1950년대에 들어들면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러한 정통적 해석에 대한 이의와 도전이 제기되어 왔다. 영국의 코반으로부터 시작된 이른바 수정주의는 프랑스 혁명의 성격이 반봉건적이 아니며, 주도 세력으로 일컬어지는 부르조아에 대한 해석도 달리 내놓고 있다. 코반을 비롯한 수정주의의 견해는 일면 재고해 볼 부분이 없지 않지만 조목조목 반박을 당해왔다. 여기에서는 수정주의의 견해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정통주의 해석의 반박을 통해 수정주의의 한계를 다시금 고찰해보기로 한다.
2.1. 코반의 해석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촉발된 수정주의의 도전은 1954년 영국의 코반이 런던대학 교수 취임 강연에서 ‘프랑스 혁명은 신화’라고 선언하면서 비롯되었다. 그는 기존의 정통적 해석이 정리한 ‘반봉건적이고 반귀족적인 부르조아 혁명’의 성격에서 먼저 프랑스 혁명의 반봉건적인 성격을 부정한다. 봉건제도는 중세의 사회조직을 서술하기 위하여 만든 술어로서 프랑스 혁명 때에는 토지소유에 입각한 통치체제로서의 봉건제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른바 ‘18세기의 봉건제도란 이전의 봉건영주의 후손들이나 그들의 영지를 구입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여러 공납과 부역들의 잔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혁명의 주체로 일컬어지는 부르조아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는데, 부르조아의 존재를 이해하는 방편으로 혁명기의 두 의회 즉 국민의회(제헌의회)와 국민공회 의원들의 직업을 조사하였다.
참고 자료
민석홍 엮음, <프랑스 혁명사론>, 까치, 1988
F 블뤼슈 <프랑스 혁명> 한길사 1999.
린 헌트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 새물결 1999.
다니엘 모르네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 대우학술총서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