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시대의 식민지 교육
- 최초 등록일
- 2005.08.03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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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발제문
2. 한일합방 이후 일본에 의해 이루어진 교육이 실질적인 근대화 교육이었는가?
3. 일제 치하 지식인들의 솔선수범 변절은 시대의 대세였는가?
본문내용
1. 서론- 개발과 수탈론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에 따라 그 성장 원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고 또 그러한 맥락에서 일제시기 한국경제에 대한 연구도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개발과 수탈’론도 이러한 새로운 연구경향의 하나이다.
‘개발과 수탈’론을 제기한 피티(Mark R. Peattie)는 일제의 조선지배에 관한 학자들 간의 견해에는 수탈을 강조하는 것과 개발을 강조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고 보았다. 즉 중심부의 식민지 지역에 대한 가혹한 요구,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 일본의 정책에 의해 초래된 왜곡과 불균형 등의 착취를 강조하는 견해와 식민지의 경제적 기반 창출과 농업 및 공업생산의 비약적인 증대를 촉진, 보건·교육이라는 점에서 조선인들의 경제적 조건의 개선, 기회의 증대와 구매력의 증대 등 개발을 강조하는 견해가 그것이라고 한다. 두 주장이 모두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동정의 양면과 같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결합시켜 ‘개발과 수탈’로을 제기했던 것이다.
수탈사와 저항사 연구를 중심축으로 해온 국내의 일제시기 연구자들에게 엄청난 도전과도 같지만 최근에는 ‘개발과 수탈’논쟁에서 생산적인 결과를 끄집어내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개발과 수탈론이 부분적으로 용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개발과 수탈’론은 수탈을 용인하는 부분과 개발을 용인하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후자의 개발을 용인하는 부분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일제시기에 조선이라는 지역에 관한 통계를 조금만 훑어봐도 경제적 기반이 창출된 면, 농업과 공업생산의 비약적 증대 등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제적 변화에 교육이 근대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없는지 검증해 보고자 한다. 분명 일제강점기시기에 개발의 측면이 완전 배제되지 못한다. 다만 개발이 있었다 할지라도 굳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태어 말하고 싶다.
근대화는 계몽사상, 자유주의와 공리주의 출현과 더불어 근대적 개념의 국가 형성과 맞물리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자율 시장 경쟁에 의한 자본주의 체계가 들어서야 근대화라고 불림직하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화에 대한 정의는 서구적 관점에 맞춰진 성격이 강하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한국의 상황을 완전한 근대과정이라 보기는 어려운 면이 많다. 단지 조선의 사회구조가 전면적으로 급속히 변화한 것이 근대화라고 보이기 쉬운 속성을 가진 것이다. 서구의 근대화 요소와는 별개로 한국의 사정에서만 살펴본다면 분명 그것은 서구 근대화에 버금가는 변화이며 그런 변화의 실체를 자료를 통해 경제적 측면과 교육적 측면에서 각각 볼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