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19C의 이탈리아 (1789-1914)
- 최초 등록일
- 2005.06.22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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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탈리아사, 서양사, 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꼭 공부해야할 이탈리아의 19세기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CHAPTER 1] 19C 유럽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시대
[CHAPTER 2] 이탈리아의 민족주의 등장.
[CHAPTER 3] 나폴레옹 점령기.
[CHAPTER 4] 1815년 이후의 복고의 시대.
[CHAPTER 5] 1848 혁명기.
[CHAPTER 6.] 1861년 이탈리아의 미완된 통일
[CHAPTER 7.] 1971년 두 번째 이탈리아의 통일
[CHAPTER 8.] Post-Risorgimento
본문내용
[CHAPTER6.] 1861년 이탈리아의 미완된 통일
1848년 혁명 이후 49년에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가 즉위하고 52년에는 카부르가 피에몬테의 수상으로 취임한다. 카부르는 전형적인 영국식 입헌군주론자이면서 매우 보수적인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통일은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라는 생각을 가진 현실파였다. 그에게는 이탈리아 중북부를 피에몬테 중심으로 통일하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었다. 이 것은 그가 평생을 피렌체 이하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더욱 확실해 진다. 그의 이런 모습은 ‘이탈리아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것인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카부르는 10년 동안 군제 개혁, 군비 확출, 공장 건설, 철도 부설, 기계 수입, 도로 개수 등 경제적 근대화를 추진하여 통일을 위한 준비 작업을 마쳤다.
.....
[CHAPTER7.] 1971년 두 번째 이탈리아의 통일
이탈리아는 1866년에 보-오 전쟁시에 프러시아편을 들어 승리함에 따라 베네토 지역을 획득한다. 또한 1870년 보-불 전쟁시에 프랑스가 패배하여 로마를 수비하던 프랑스군대가 철수함에 따라 이탈리아 정부는 별다른 어려움없이 로마를 점령한다. 이것을 보통 이탈리아 통일의 완성, 혹은 두 번째 이탈리아의 통일이라 일컫는다.
새로운 이탈리아 국가에게 있어 로마는 임무와 책임감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도덕적’ 재무장의 상징이었다. 또한 황제의 로마이자 교황의 로마로써 전세계에 새로운 문명을 전파하였고 이제는 ‘제 3의 로마’, 즉 ‘민중의’ 로마로써 탄압받는 자들에게 해방과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위의 책, p. 205
이러한 로마의 점령은 수많은 이탈리아인들의 숙원으로 이런 영토적 통일은 처음으로 지식인과 정치인들에게 국가라는 실체를 느끼게 해주었다.
참고 자료
*김기순,「자유주의와 민족주의」,『서양사강의』, 한울, 2000
*루이지 살바토렐리, 『이탈리아 민족부흥운동사』
*크리스토퍼 듀건, 『미완의 통일 이탈리아사』,
*량치차오, 『이태리 건국 삼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