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녀들의 시를 근거로 한 기생시의 특성
- 최초 등록일
- 2005.06.19
- 최종 저작일
-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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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기생이란 말의 의미는 황진이를 평가한 사람들의 말처럼 여염집 아낙과는 다른 정절을 지키지 않고 혼인한 혹은 총각의 다른 남자들을 연모 할 수 있으며 시도 짓고 노래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황진이는 조선 중종 때의 기생이였으며 1520년대에 태어나 1560년대에 죽었을 것이라는 것만 추측 될 뿐 정확한 자료는 없다. 다만 황진이가 사귄 사람들의 남아 있는 자료로서 그의 인생과 시를 엿볼 수 있었다. 황진이는 봉건적인 세상에서 첩의 소실이라는 사회적인 비판과 눈총에서 살아가기 보다는 모든 봉건 윤리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였고 그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며 살았다. 자료를 찾으면 전국에는 당시 약 3만명의 기생이 살았다고 적혀있다.
-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동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이 시조는 황진이가 지은 시조로서 몇 백년이 된 지금까지도 세상에서 흔히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를 지은 출처에 있어서 또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그때에 왕족중에서 벽계수 이은원이 있었다. 그는 황진이 소문을 듣고, 만일 내가 그 계집을 본다면 침혹은 커녕 천하 요망스러운 년이라고 당장에 호령을 하여 축출하겠다고 장담을 하였었다. 이야기를 들은 황진이는 그가 얼마나 고결한가 한번 시험에 보리라 하고 중간에 사람을 놓아 벽계수를 유인하여 만월대구경을 오게 하였는데 때는 마침 만추시절이라 중천에 월색이 교교하고 만산에 낙엽은 소소하여 누구나 감개한 회포가 일어날 즈음이었다. 황진이는 단장소복으로 숲속에 숨어 있다가 연연히 나와서 이씨의 말고삐를 휘여잡고 위에 적은 노래를 한곡조 부르니 이씨가 월하에서 그 어여쁜 자태를 보고 또 청아한 노래를 들으니 스스로 심신이 황홀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부지중에 말에서 떨어져서 창피를 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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