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당전쟁] 고구려 수당전쟁사 정리
- 최초 등록일
- 2005.06.19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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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위진남북조라는 분열의 시대 이후 중국은 ‘수’라는 통일제국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에 고구려는 긴장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써 내적 안정화와 함께 주변의 불안한 세력을 복속해 나가기 시작한다. 건국 초기에는 고구려와 힘의 평형으로 침공위협이 줄어 있었으나 위와같은 고구려의 움직임에 수는 위협을 느끼고 곧 고구려에 대한 정책의 방향을 바꾸려 하였다. 그러나 이를 간파한 고구려가 먼저 영양왕 9년에 요서지방의 영주지역을 선제공격하였다. 하지만 공격로상의 문제와 영주지방의 탄탄한 방어태세 때문에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고 오히려 이것으로 수를 자극하게 되었고 곧 수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수의 제1차 고구려 공격의 원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원정의 시기가 요하의 우기와 겹치면서 악천후 속의 이동이 이어져 모두가 지쳐있었고, 보급선 또한 풍랑에 의해 모두 침몰하게 되어 그들은 아무런 성과 없이 결국 퇴각을 하게 되었고 이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수가 다시금 고구려에 사절을 보내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맺었으나 이후 다시 두 나라간의 외교적 마찰이 일어나고 결국 제2차 고구려 원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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