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무역] 상관습
- 최초 등록일
- 2005.06.08
- 최종 저작일
- 2005.06
- 5페이지/ MS 워드
- 가격 1,000원
목차
A.한국 상괍습
B.중국 상관습
C.일본 상관습
본문내용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선사회는 사상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게되고 특히 농업분야는 생산성에 있어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졌다. 17세기 후반 이래 보급된 이앙법의 발전으로 노동력의 절감효과를 가져왔고 그에따라 광작 또는 광농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농민들의 이농현상이 발생하게 되었고 상공업종사자가 늘게 되면서 상업이 발달하였다.
조선 건국초기에는 육주비전(六注比廛) 및 시전을 비롯하여 공인(貢人), 계인(契印), 지방의 시전 및 좌고(坐賈), 보부상(褓負商), 객주(客主), 여각(旅閣), 장시(場市) 등 일부 특권적 제한적인 상인을 제외하고는 일체 상행위를 허용하지 않았다. 객주에는 물상객주(物商客主), 여각(旅閣), 만상객주(灣商客主), 보상객주(褓商客主) 보행객주(步行客主), 환전객주(換錢客主), 무시객주(無時客主), 경주인(京主人) 등이 있었다.
17세기에는 육주비전을 비롯한 대규모 시전에 청나라에 보내는 진공품(進貢品)을 조달하는 국역을 부담시키는 대신 그에 상응한 특권으로서 각 시전이 각기 독점취급하는 물종에 대해 다른 상인들이 이를 취급할 수 없도록 단속할 수 있는 배타적 권한인 금난전권을 부여하였다. 이후 정조15년인 1791년의 신해통공과 1794년 숙종의 갑인통공에 의하여 금난전권은 폐지되고 누구나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정책이 선포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