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조선후기의 촌락과 촌락조직의 성격변화
- 최초 등록일
- 2005.06.02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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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중세사 수강생한테 쓰일 자료.
목차
Ⅰ.조선후기의 촌락, 동족촌
1.동족촌
2형성배경
3.분동
Ⅱ.촌락조직의 성격변화
1.민중조직의 활성화 -두레-
Ⅲ.맺음말
본문내용
조선 전기 사족 중심의 지배질서가 확립되면서 생활공동체적 기반을 가졌던 대부분의 촌락조직들은 지주제적 강제와 향약질서의 강요로 그 기반이 사족들의 통제구조하에 귀속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기층촌락조직들은 대개 사족들의 동계조직의 하부단위로 편제되었다. 이처럼 기층민의 촌락조직을 상하합계의 형태로 포섭하려던 16~17세기 상하합계 조직은 본질적으로 사족 중심의 향촌재편을 목적으로 하면서, 수령권의 촌락에 대한 통제를 방어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 16~17세기 상하합계 조직은 본질적으로 상하민간의 목적과 이해가 다른 상태에서 상위조직에 의해 주도되게 마련이었고, 이미 기본적인 한계를 드러낸 사족들이 기존의 특권과 영향력을 강요하는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족들의 편입요구에 대한 촌락조직들의 반발양상도 부분적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의 측면에서 당시 일정한 수준의 자체 성장과정을 겪고 있던 촌락기층민들은 상하합계의 동계운영에서 자신들이 참여하는 폭을 훨씬 확대하였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고, 그러한 경험의 축적을 통해 계층적 자기인식의 분위기도 성숙되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즉 촌락기층민들은 그들대로 제한된 당시의 사회구조 속에서나마 현실에 대한 인식과 대응의 방향을 일정하게 모색하고 있었으니, 두레발생과 농업기술상의 변화와 연결에 대한 논의는 그런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앙법등의 조선후기 농업기술의 발달은 생산양의 증가를 가지고 오고, 경제적․시간적 여유는 공동노동조직의 운영기반을 충실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두레조직은 기본적으로 지주층의 참여와 간섭을 배제하여 자작․소작농민을 성원으로 했던 까닭에 신분제적 강제나 지배층의 모순강요, 법외의 침탈이 가증되었을 경우 이를 벗어나려는 공동적 대응과 자체 결속을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생산력과 연관된 경제가빈이 확보되었을 때 그 기능은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고, 이들은 명실상부하게 기층촌락민의 입장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부상하였을 가능성은 쉽게 추측된다.
참고 자료
조선시대 향촌사회사 정진영 한길사 1998
한국사 (34권 조선후기의 사회,36권 조선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국사편찬위원회 탐구당문화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