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정읍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5.05.24
- 최종 저작일
- 2004.05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Ⅰ. 서론
다시 찾은 농민군의 흔적
Ⅱ. 본론
동학농민운동의 도화선이 된 만석보에서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물리친 격전지 황토현
Ⅲ. 결론
현재까지 이어지는 현대사 동학혁명
본문내용
정읍에서 들어서서 처음 간 곳은 동진강과 정읍천의 합수 지점 근처에 있는 만석보(萬石洑)터다. 우리나라 최고의 곡창 지대로서 논으로 이루어진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인 배들평야에 자리하던 만석보는 한국사의 일대 변혁을 가져왔던 동학농민운동의 도화선이 된 곳이다.
1892년 5월, 고부군수 조병갑은 이미 제 역할을 하는 예동보(禮洞洑)가 있었음에도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그 아래에 새로운 보를 막고 만석보라 하였다.
그러나 홍수가 나면 냇물이 범람하여 상류는 오히려 큰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도 조병갑은 보세(洑稅)를 거두면서 농민들의 원성을 샀다. 게다가 여러 명목으로 부당한 세금도 거둬들여 착복을 일삼기까지 했다. 이에 녹두장군 전봉준을 선두로 분연히 일어선 농민들이 1894년 1월 10일 밤 배들평으로 몰려가 만석보를 부숴버리면서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은 하천으로 제방의 흔적은 없고 1973년 동학혁명기념사업회에서 세운 유지비와 1999년에 세운 양성우 시인의 ‘만석보시비’가 있다. 비석엔 1975년 YWCA에서 ‘겨울 공화국’이라는 시를 낭독한 사건으로 교사직을 파면 당한 경력이 있는 양성우 시인이 지은 시 ‘만석보’가 정성스레 새겨져 있다. “들리는가, 친구여/갑오년 흰눈 쌓인 고부들판에/성난 아비들의 두런거리는 소리/만석보 허무는 소리가....
지금 내 귀에도 그 성난 아비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곳 만석보에 오는 길 ‘쌀 개방 저지, 농촌 사수’의 현수막 깃발이 나부끼는 꽃길은, 농민들의 또 다른 아픔이 계속되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생존권을 지키려 몸부림치는 농민들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다.
참고 자료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