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사] 지눌의 선사상
- 최초 등록일
- 2005.05.23
- 최종 저작일
-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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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자눌에 있어서 깨달음의 세 가지 전기
2. 진심으로 들어가는 돈오점수
3. 마음 닦음에 있어서 정혜쌍수
4. 교육에 시사점
본문내용
1. 지눌에 있어서 깨달음의 세 전기
지눌은 그가 주도했던 정혜결사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개경을 떠나 창평 청원사에 머물게 된다. 지눌은 당시 불교계에 깊이 실망하였지만 속세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대신 지눌은 궁극적 실재인 진여를 깨닫기 위한 수행을 한다. 이 시기에 지눌은 진여가 현세와는 구분되는 제 3의 존재로서 어딘가에 실재하는 진리의 섬으로 판단하며, 망심을 벗어나 진여에 이르기를 원한다. 지눌의 이러한 객관주의적 세계관은 <육조단경>의 한 구절을 만나게 되면서 깨달음의 첫 번째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지눌이 얻은 깨달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생겨나는 생각과 행동들은 진여자성이라는 궁극적 실재로부터 일어나는 것으로 그것과 따로 떨어져 대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속불이의 진리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지눌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힘들게 찾아 헤매던 진여는 일상적 활동을 떠나서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삶의 자리에서 만나고 얻어진다는 소중한 깨달음인 것이다. 이러한 지눌의 깨달음은 문자를 통해 얻어진 것이지만, 단순히 언어적 이해가 아닌 진리 자체에 대한 깨달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눌의 두 번째 깨달음 역시 경전을 통해 얻어진다. 첫 번째 깨달음 이후에 지눌은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선의 진리를 확신을 갖는다. 그리하여 자기의 마음을 관하는 것보다 화엄의 사사무애관이 더 낫다는 어느 강사의 말에 지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진리를 자기 자신 속에서 주체적으로 깨닫는 경험 없이 단지 사물에 대한 추상적 진리를 관하는 것은 참된 길이 아님을 지눌은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의 진리가 선종만의 독점물인가 하는 의문이 지눌에게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었다. 선의 진리가 불교인 이상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발견될 수 있다는 확신과 당위가 지눌에게는 있었던 것이며, 그것을 자신이 체험적으로 깨닫고자 했던 것이다. 지눌은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삼 년이나 불교의 경전에 매달렸으며 <화엄경>을 통해 결실을 보게 되었다. 중생의 마음은 부처이나 중생이 무지로 인해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내용은 선종의 즉심즉불과 조금도 다른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눌은 <화엄경>을 통해 부처의 말씀인 교에도 선의 진리가 있다는 두 번째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