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독도
- 최초 등록일
- 2005.04.30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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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독도 정책에 관심있으신 분이나 독도 관련 리포트 쓰시는 분 깔끔히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 하세요 ^^
목차
1.연구목적
2.독도의 역사
3.독도의 모습
4.한일간 영유권 논쟁
1)우리측 독도 정책
2)일본측 독도 정책
5.결론
본문내용
2.독도의 역사
독도의 내력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지어 살펴보아야 한다.
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512)후였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13년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 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울릉도라는 명칭이 정착됨에 따라 그 부속 도서인 독도로 우산이라는 명칭이 이동하게 되었다.
도선 1432년에 편찬된 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서도 “우산, 무릉 두 섬이 현 정동바다 한가운데 있다.” 하여 동해상에 무릉과 우산의 두 섬이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1531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울릉도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 하여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다. 1694년에는 산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1/3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을 담은 <장한상 울릉도사적기>를 펴냈다.
이것은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하는 것이다. 18세기에 나온 정상익의 <동국지도>에 이르러서는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지도첩에는 으레 울릉도 옆에 우산도 또는 자산도를 표기하고 있다. 일본 스스로도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인정한 자료가 줄을 잇는 것이다.
독도는 512년 울릉도와 함께 신라에 귀복되었으며, 고려에서는 행정 구역에 편입시키고 백성을 옮겨 살게 하는 등 울릉도와 독도 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었다.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 ‘가산도’, ‘가지도’ 등으로 불렀다. 조선은 한때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모든 섬에 공도정책을 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가 잦아지자,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 받고 일본 어부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였다.
1667년 일본인이 편찬한 <은주시현합기>, 1905년 동경박물관에서 펴낸 <일본전쟁실기> 등의 자료에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밝혔다.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독도를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도서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편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독도를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5년 앞선 것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사실을 뒤엎을 수 있는 귀중한 발견으로 평가된다.
‘독도’라는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상북도에 편입되었고, 2000년 4월 7일을 기점으로 행정구역상 주소를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1~산37로 정하였다.
참고 자료
독도 영유권 위기 연구/독도역사찾기운동본부/백산서당
독도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주장/김병렬/다다미디어
독도 논쟁/김병렬/다다미디어
독도/박인식/대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