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게바라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5.04.21
- 최종 저작일
- 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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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어느 토요일 “정진영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우리나라의 민간 사회복지 단체들을 고발했다. 21세기가 된 지금, 장애인들은 보이지 않은 곳에선 인간이 아니었다. 한국은 사회복지라는 단어와 참 어울리지 않는다. 국민들은 장애인들에 대한 복지 의식이 빈약하고, 행정당국은 복지를 음식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설 복지 단체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이며, 이사장들은 사회복지 시설을 그네들의 쌈지 돈이 나오는 곳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사장들이 사회복지 시설에서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은 정상인보다 훨씬 낮은 정신연령을 가진 장애인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고, 추운 겨울에 난방도 때지 않은 방에서 자게 했다. 식사라 할 수 없는 밥을 먹으며, 보호받아야 할 장애인들이 손을 묶인 채 방에 방치 되어있었다. 복지 시설의 압박 속에 사람이 죽을 정도의 매질을 맞았지만, 그들은 사회 어느 곳에도 항변할 길은 없다는 것을 우리 사회와의 괴리로 깨달았나보다. 사람이 매질과 폭행으로 살해당한 것을 자연사로 위장시켜도, 사람을 앞마당에 묻어도, 사회는 시선의 방향을 그들에게로 돌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들을 보면서 한 사회에 이면은 항상 존재한다며, 그 나머지 뒷면을 가슴 아파하며 사랑했던 체 게바라가 생각났다. 죽은 게바라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추키카마타 광산에서 일하는 인디오들을 보면서 에르네스토가 체로 될 수 있었던 계기를 쌓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나 또한 텔레비전을 보면서 게바라가 느낀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인간이 느끼고,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긴 장애인들을 보면서 그 위에 그들의 피와 땀을 빼앗는 이들에 대한 분노, 지금 우리가 정말로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가, 되묻게 만드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이면, 즉 사회의 부조리에 치를 떨었다.
그러면 내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이 대답을 하기에 앞서 많이 망설여진다. 학과 공부와 아르바이트, 친구들과의 만남, 이 모든 생활을 포기할 용기가 있을까? 현재 수많은 젊은이들이 체 게바라를 그들만의 영웅으로 받드는 것은 바로 나와 같은 현실을 당면했을 때 느끼는 무기력감에서다. 게바라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이였다. 우리는 실천을 못하는 겁쟁이들이다. 그것은 잘 못 된 일을 보고도 자신을 먼저 챙기는 개인주의의 팽배와, 더 나아가 자본주의에 물들여져 현실 안주에만 그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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