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 신라향가 '풍요'의 성격 논의

저작시기 2005.03 |등록일 2005.04.06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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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라향가인 '풍요'의 성격에 대한 논문 2편을 참고하여 직접 작성한 발표문입니다. 풍요에 대해서는 더 없이 좋은 자료라고 확신합니다.

목차

1. 서론

2. 논문의 내용
(1) 제목에서 발견되는 노동요로서의 성격
(2) 진흙을 반죽하며 부른 노래
(3) 형식에서 발견되는 노동요로서의 성격
(4) 내용에서 발견되는 노동요로서의 성격
(5) 소결

3. 논문의 검토와 여론
(1) 풍요라는 제목에 대한 여론
(2) 이토시주의 노래라는 견해
(3) 형식에 대한 이론
(4) 내용에 대한 여론
(5) 소결

4. 결론

본문내용

4. 결론

풍요의 성격은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때에 세간에 불려지던 노래와 선덕왕 대의 양지법사가 영묘사의 장육존상을 소조할 때 지어 부른 노래가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논의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일연이 삼국유사에 기록하기로 지금의 사람들이 방아를 찧을 때의 노래하였다는 데에 얽매여 선덕왕 대에 불리워진 노래 역시 노동요의 성격을지녔다고 하는 것은 그 근거에 취약한 점이 있습니다. 선덕왕 대에 불리워진 노래가 노동요의 성격을 지녔다고 하는 교재 논문의 주장은 그 근거로서 형식에 있어서 현재 전해지는 방아찧기 노래와 유사한 2음보 2행씩 짝을 이루는 형식을 가졌다는 것인데, 1행이 3음보인 점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고 있지 않으며, 이는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재의 논문이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지 못한 채 논의를 마치고 있는 것은 그 접근 방식이 결과론적인데 따르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성격을 노동요로 규정 해 놓고, 작가, 형식 등을 그에 끼워 맞추다 보니 완벽히 들어 맞지 않는 것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형식을 3음보의 4구체로 보는 견해는 그 성격을 공덕가에 가까운 것으로 보면서,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하는 시점까지의 500여년의 세월 동안 전승 되는 과정에서 노동요로서의 성격을 취득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1행을 굳이 예외적인 것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고, 500여년에 걸친 노래의 변이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또한 긍정적이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풍요는 신라 성덕여왕 이전의 대승이 공덕 닦기를 권유 할 목적으로 지었고, 선덕여왕 때에는 영묘사의 장육존상의 소조시 왕경 남녀의 공감을 이끌어 냄으로써 불리워 졌고, 그 뒤 500여년의 세월 동안 변이의 과정을 거쳐 방아찧을 때에 부르는 노동요로서 쓰여 삼국유사에 기록되기에 이르렀으며, 성덕여왕 대의 노래의 내용과 형식에 미루어 볼 때 공덕가로서의 성격이 보다 짙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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