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광해군
- 최초 등록일
- 2005.03.27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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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불운한 군주인가 패륜아인가
2. 준비된 임금, 그러나 정통성은 약한 임금
3. 소수파 정권의 굴레에 얽매인 광해군
4. 궁궐공사에 매달린 까닭
5. 명과 후금 사이에서의 줄타기 외교
6. 광해군이 우리에게 남겨두고 간 것
본문내용
불운한 군주와 패륜아 사이
조선왕조에서 가장 불운했던 군주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이가 광해군(光海君, 1575~1641)이다. 단순히 그가 쫓겨난 임금이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그가 처했던 환경이 그러하였고, 어느 정도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으되 그것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던 점에서 더욱 뚜렷하다. 더구나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데에는 그가 극복하기 어려웠던 여러 환경적 조건이 얽혀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에게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광해군을 불운한 군주로 여기게 된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이유에는 조선시대 내내 성리학 윤리의 잣대에 의해 은혜를 모르고 명을 배반한 임금, 동생을 죽이고 모후를 폐위시킨 패륜아로 평가되었고 중·고등 국사시간에도 그렇게 배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와서는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능란한 외교 솜씨를 발휘하여 전쟁의 도탄에 빠지지 않도록 한 군주로 재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광해군에 대한 평가가 극에서 극으로 바뀐 데에는 한국사의 자주성을 부인하는 만선사관의 틀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 일본의 이나바의 주장이 큰 영향으로 바뀌었다. 광해군 - 광해군 평가의 극과 극
전자의 경우는 역사의 진실을 감추는 것이 되고 후자의 경우는 식민사관이 되기 쉽상이다. 이처럼 그의 대한 평가는 극단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광해군이 그가 무엇을 했다라는 그 결과만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그는 패륜아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온 인물임이 사실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가 왜 그랬을까 라는 논지를 가지고 보면 전자와 다른 답이 충분히 나올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번 과제를 광해군이 민생정치를 어떻게 해서 무슨 업적을 남기고 갔는지에 대한 그러한 구체적 관점보다 그가 왜 서로 다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구조적 관점에서 그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점 양해해주시기 바라며 발표를 시작하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