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무과를 통한 신분 상승
- 최초 등록일
- 2005.03.01
- 최종 저작일
- 2005.02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고려대학교 한국문화사 시간에 작성한 레폿입니다.
특히 무과를 통한 신분상승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작성한 레폿이구요. 이것이 04년 기말시험에 출제되었네요^^ 당연히 전 이 내용을 가지고 써서 A+ ^^v
목차
1. 서론
2. 본론
1) 보충군의 설치
- 조선의 건국과 태조의 사회정책
- 양인확대정책의 계승과 태조의 독자정책
- 세종의 환천법시행과 양인확대정책의 축소
- 종부법의 실시로 여진을 제압한 세조
2) 보충대와 천인의 신분 변동
- 성종의 급양인
- 훈구파와 신진사림 사이의 중종
3) 조선후기의 보충대
- 임진왜란의 발발과 급변하는 신분
- 광해군 시대의 크게 달라진 천인들의 종량
3. 결론
본문내용
서 론
조선 초기 개방적 사회체제는 경국대전이 반포된 성종 대부터 지양되고 양반관료 중심의 폐쇄적 사회체계가 강화되었다. 이에 따라 양인의 사민화 현상이 커져 신분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한편, 군역인구가 급속히 감소하였다. 거기에 더해 대외적으로 사대교린에 바탕을 둔 쇄국정책을 실시함으로서 북로남왜의 침략이 잦았다. 특히 명종 10년의 을묘왜변과 선조 16년에 일어난 이탕개의 난을 계기로 서얼과 공사천의 군역 편입이 실현되었는데, 당시 진관제가 제승방략제로 전환되었던 군사제도의 전술적 변화에서도 양인 인구의 감소로 군역인구의 감소 현상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군제 변동은 조선후기 무과에 큰 영향을 미쳐 임진왜란으로 군액 징발체계가 붕괴된 상황에서 정부는 필요한 군병의 확보를 위하여 천인의 무과 급제를 용인 할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이후 후금이 서북쪽 국경을 침략할 경우 무과 출신자를 즉시 부방군사로 전환하기 위해 광취무과를 통해 많은 급제자를 선발하였다. 따라서 천신분이 불법적으로 무과에 급제할 수 있는 여지가 더욱 많아졌다.
한편 똑같은 불벌체제를 고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조, 효종 대에는 천인의 무과 급제가 억제된 방면, 숙종 대에는 활성화되었는데, 이 같은 현상은 정치사회변동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이에 관해 임진왜란 이후 천인의 무과급제가 광범하게 실현되었다는 견해와 실현되지 않았다는 상반된 견해가 있다. 하지만 전자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천인이 무과를 통해 신분 상승하는 과정을 다음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려 한다. 첫째는 임진왜란 직후부터 선조 대 말까지의 천인무과 시기이고, 둘째는 전란은 끝났지만 후금의 침략이 예상되었던 광해군대의 광취무과 시기이며, 셋째는 인조 대부터 숙종 대까지의 만과 시기가 그것이다. 무과를 통한 천인의 신분상승 과정을 이와 같은 세시기로 나누어 고찰하면 어느 정도 천인의 신분변동에 접근할 것으로 본다.
참고 자료
1. 사료로 본 학국문화사, 이광린, 일지사